2009년 5월 28일 목요일

회색인

 
2004년 3월 13일

2004년 3월 13일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종로로 모여 촛불을 켰다.
나 역시도 권력에 눈이 멀어 멀쩡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못난 심보에 무척이나 화가 났고, 종로에 나아가 '탄핵 반대'를 목이 쉬도록 외쳤더랬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났다. 나는 어느덧 '지성'에 목마른 청년이 되어있었다.
 사회주의 세계사라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도 어설프나마 완독했고, (시각 예술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이미지의 정치학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알아갔고, "한스 하케"나, "수잔 레이시"와 같은 공공성과 참여를 강조하는 작가들을 접하면서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어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고, FTA를 둘러싸고 광우병 촛불이 점화되었다. 100여일 가까이 촛불이 밝았다.
하지만 4년여간 '많이 공부한' 내가 촛불을 보고 떠올린 것은 '파시즘-집단적인 과격함'에 대한 환멸 혹은 공포였다. 또는 몽매한 대중이 또다른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는 냉소였고, 또는 대안이 없는 반대일 뿐이라는 도피였고, 나는 이러한 역학 관계에서 냉정을 잃지 않으며 휘둘리지 않는다는 비겁함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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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영결식을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한다는 생각으로 영등포 구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5년여 전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 코를 찌르는 향내와 짐짓 숙연한 분위기에 괜시리 눈 밑이 화끈거렸다.

 내일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정권 타도를 외치며 촛불이 타오를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노무현이 과연 영웅인가. 정권 타도가 해답인가. 분노만이 유일한 방법인가. 5년전의 뜨거웠던 가슴엔 쟂빛 의심만이 가득한 채로 말이다.

2009년 4월 27일 월요일

아현4구역, 재개발, 그리고 사진.

 지난 1월 용산참사 이후, 언론과 인터넷 상에서는 과격시위와 강경진압을 놓고 한동안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철거민들을 옹호하는 논리는 주로 그들이 처한 현실적 절박함을 이야기 했고,
그에 맞서는 사람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류의 원칙론을 펼쳤다.
양쪽 모두 그럴듯해 보이는 논란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무의미한 양비론을 제외하면) 나는 과연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심정적으로 '사회적 약자'라고 칭해지는 철거민들의 편에 쏠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사태를 조금 냉정하게 살피자면, 갈등의 주된 주체인 (집주인들의)조합과 세입자를 비롯
시공사, 관련 행정 기관까지 각자의 '이득'을 위해 밀고 당기는 데다가,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경제 논리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편을 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굳이 절대惡을 뽑자면, 조합이나 세입자들과는
이해 관계가 없는척 하면서, 손안대고 코풀자는 식의 시공사를 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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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한 현실에, 복잡한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곰곰 생각해보았고,
해서 내린 결론이 재개발 현장에 가서

떠나간 이들의 행복을 빌어줄,
떠나올 이들의 행복을 빌어줄,
남아있는 이들의 갈등을 덮어줄,
(그리고 공사현장사람들이 난데없는 돌무더기에 살짝 당황했으면 싶은)
(그리고 내 자신의 조그만 표현이 되어줄)

 '돌탑'들을 쌓고 오는 것이었다.
(두달여전부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오다 마침 주말 사진 포트폴리오 수업이 계기가 되어
 움직일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받았다)

 지난 일요일 저녁엔 아현 4구역에 들렀다. 애오개역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구역으로,
만리동고개로 이어지는 달동네가 위치한 곳이다. 고등학교 시절 달동네 꼭대기의 <환일고>에 오르느라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렸던, 하교길이면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 사이사이로 비탈을 달려 내려오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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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시간 여 정도 재개발 구역을 둘러보며, 여기저기 돌탑을 쌓다보니,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날도 어둑해져
돌아갈 채비를 하던 중, 문득 뒤쪽 집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복실아, 복실아, 이리와!"

 순간적으로 현장 관계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번 제지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헐어진 벽 뒤로 몸을 숨기고, 인기척을 죽였다.

 "복실아, 이리와! 안돼!...어어.."

이리저리 헐어진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던 '복실이'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이 노출되고 말았고,
 쌓던 돌을 밀어놓고,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진 찍을 구도를 잡는 척 했다.

 "사진 찍으러 오신거에요?"

 "아, 예..안녕하세요.."

 "나도 인터넷에다가 종종 사진 올리지만.. 거, 옛날 추억 이런거 말고, 여기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나가는 사람들 그런거 좀 찍어봐요.. 난 여기 안살지만, 여기 다 수십년씩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인데,
 평당 800씩 주고, 자기네들은 평당 1600씩에 분양하면, 서울 어디가서 살라고..."

현장 관계자분은 아닌가보다. 일단 다행.

 "그쵸..정작 원래 살던 사람들은 못들어오는게 재개발이죠.."
 
 "재개발 몇년전부터 부동산들 들어와서 다 쪼개놓고, 조합은...이건 완전 브로커야,
 건설사하고 주민들 사이에서 조합이 다 해먹는다고...
 세입자들 이사비용 700, 800씩 집주인들이 다 해준거라고..."

 "요 앞에 3구역 조합임원들 100억원 해먹었다고 엊그제 났더라구요..."

 "내가 엊그제 세봤는데, 아직 헐리지 않은 집에서 30%정도는 남아있는 것 같아....
 에휴..재개발 이건 완전 잘못된거라고..누구 좋으라고 하는건지 원...
 복실아! 이리와! 이렇게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를 누가 문다고 하는건지....
 지가 해코지하려니까 무는거지..암튼 조합놈들.... 그럼 수고해요.."

 "예, 들어가세요.."

 마저 돌탑을 쌓고, 사진을 남기고, 길을 걸어 내려가던 중, 복실이네 집 할머니를 만났다.

 "조합에서 나왔어? 아직 안헐린 건물들 있으니께 헐어내라고?"

 당황한 마음에 대충 둘러댔다.

 "아뇨, 인터넷에 올리려구요."

 "어머니, 그냥 작품 사진 찍으러 오신 분이에요"

 아까 그 남자의 말. <그냥 작품 사진>. 부끄럽다.

 "내가 억울해서 못나가, 평당 800씩 받고 어떻게 나가, 서울 어디가 평당 800이여,
 요 앞 3구역은 엊그제 뉴스에 났던디, 우리도 함 나야제..."

 저 위에 돌탑들을 내가 쌓았노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데, 변명하고 싶은데,
 내 나름의 실천이라고 생각했건만, 정작 현실의 사람들과 만났을 때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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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들어가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예, 안녕히 계세요...."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실'의 사람이 지닌 강력함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논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더 플레이스 (The Place)

 상순형이 준 CJ 외식상품권이 있어서...무엇에 쓸까 무척이나 고민했더랬다...

대표적인 사용처로는 VIPS, 피셔스 마켓, 씨푸드 오션, 뚜레쥬르, 투썸 플레이스 등등이 있는데...

최근 씨푸드 패밀리 레스토랑들은 하향세인데다가, 피셔스 마켓이나, 씨푸드 오션이나 평이 너무 좋지 않았고,

VIPS는 무난하긴 하지만, 밍군이 꺼려하는 관계로 패스....그렇다면 결국 뚜레쥬르에서 빵이나

사먹을 운명인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사용처 중에 The Place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홈페이지(http://www.cafetheplace.com/)를 찾아보니, 위치가 광교와 광화문이라는 애매한 점은 있지만,

나름 가격대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괜찮아 보여서 방문 결정! 지난 일요일 점심에 광교점을 다녀왔다.

메뉴나 음식 컨셉은 Mix&Bake를 많이 참고로 한 듯 했고, (서울대에 있는 The Kitchen도 같은 컨셉..)

분위기로는 적당히 캐쥬얼하면서 살짝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게, Mix&Bake나 Kitchen 보다는 한수 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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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g 당 2,500원 하는 샐러드 바. 소심해서 팍팍 못담고 쪼꼼씩쪼꼼씩..^^ 3,700원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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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 크림 파스타(\9,800). 노리타나, 일프리모, 프리모바치오 등의 진득한 크림소스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먹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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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군도 나도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멕시칸 피자(\7,800).  이처럼 야채가 듬뿍 올라간 피자는 내가 아는 한 삐에뜨로의 마르게리타가 유일. 하지만, 삐에뜨로 매장들이 하나 둘 철수하면서 아쉬웠었는데, 이곳에서 적당한 대안을 찾은 느낌^^  가격도 저렴!(\7,800).

 종로에 먹을만한 맛집 하나 개척해서 뿌듯했던 하루^^ (거기다 계산도 상품권으루 뚝딱~)

2009년 3월 27일 금요일

20090314 석모도

지난 화이트데이...그런거 챙기지 않기로 했지만..그냥 보내긴 살짝 아쉬워서..
강화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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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석모도 갈매기...새우깡을 잘도 채가더라만은....오후에 돌아오는 배편에서 갈매기는..
배가 부른탓인지 게을러져서 영 신통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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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모도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보문사. 뒷산에 새겨진 마애불상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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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사람들이 드나드는 탓인지 여기저기 새로 만든 석상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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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상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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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의 마애불상을 보러 올라가는 길에..제법 규모가 되는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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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해바다와 갯벌이 보인다. 멀리 반짝거리는 갯벌이 나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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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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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모도의 특산물이라는 밴댕이..그리고 밴댕이 회무침. 전어랑 크기도 비슷 맛도 비슷한데,
전어보다는 조금 더 맛있는 것 같긴 하다. (전어보다 조금 덜 느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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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모도 유일의 해수욕장이라는 민머루 해수욕장. 서해가 늘 그렇듯..물이 빠져나간 자리엔 썰렁한 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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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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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차를 달리다가(라지만, 한바퀴 도는데 30분도 안걸릴듯..) 표지판을 보고 들어간 "삼산저수지"
우연찮게 괜찮은 풍경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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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도 잡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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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길을 가다 길 가운데서 찍어봤다. 왠지 이렇게 한적하고 평평한 풍경은 오래간 만인듯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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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러져가는 건물들과 새로생긴 펜션들..

주말인데다 화이트데이라서 사람이 붐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갈때도 한산..올때도 한산.
강화도가 인기가 없긴 없는 모양이다. 특히나 아직 겨울이 남아있는 때에는.
특별히 굉장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있다면 새우깡 갈매기 정도-.-?)
늦겨울/초봄 한적하게 드라이브하고 싶을 땐, 강화도/석모도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듯 하다.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헌책방 득템~^^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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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흙'서점에서 건져올린 것들.
푸코의 추는 처음에 하권만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길래 '상권 없으믄 어떻게 사라고' 싶었는데,
헌책방 정 반대편 구석에서 상권을 발견.. 쾌재를 부르며 구입.
움베르토 에코의 <전날의 섬>도 상권만 보이던데... 하권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포기.

<현대미술의 전략>은 약간 미학 오딧세이 풍의 현대 미술에 내재된 현대 사상들을
정리해놓은 것인데... 이런류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겸손한 마음에서 한 권 구입...

<신화의 힘>은 비교 신화학자 '조셉 켐벨'에 대해서 어딘가 줏어들은 풍월이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한 권...

중요한건 이 모두가 12,000원이라는 것!
요새 책값 기준으로 간신히 한 권 살만한 가격이라는 거^^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의미의 경쟁(The Contest of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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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경쟁 (20세기 사진비평사)
리차드볼턴 | 김우룡 역
도서출판 눈빛



 흔히 '소통' 또는 '참여'로 이야기 되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맺음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많은 예술관련 비평서들이 그 관계맺음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 모더니즘(즉, 자기지시적인 예술을 위한 예술)의 맹위는 유효하다.


 단시간내에 예술사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한 '사진'의 경우도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까닭.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의 작업이 '예술'과 구분되기를 바라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 하다.

 <의미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위의 질문-사진과 사회의 '관계맺음'에 대한 비평들의 모음이다.
 20세기 사진 비평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의미의 경쟁>은 사진이 미술관을 통해서
모더니즘 미학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시작해서, 예술 장르의 사진에 국한하지 않고,
광고, 언론, 다큐멘터리, 근대 경찰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이 어떻게 이용되어 왔으며,
그 사진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사적인 담론들과 과연 사진이 표방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상당수가 논문으로 발표된 까닭에 쉽게 읽히는 글들이 아니며, 특히 동성애나, 중남미 혁명에
관한 글들은 문화적인 차이 등으로 해서 다소 접근이 난해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글들이 짚어내는 사진의 역사적, 계급적, 문화적 맥락과 날카로운 비평들은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의 끈기와 인내에 충분히 보답을 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비교적 매끄러운 번역도 그 공로를 기릴 필요가 있다!)

 - 목차 -

미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미술관과 도서관의 서로 다른 사진 인식 / 더글라스 크림프
-사진을 판결하는 자리 -뉴욕 현다미술관 / 크리스토퍼 필립스
(*스티글리츠와 사코우스키의 대결이 볼만하다)
-팩투라로부터 팩토그래피로 -사진에 있어서의 러시아 형식주의 / 벤저민 H.D. 부크로
(*서구 사진사에 밀려 역사속에 묻혀진 러시아 사진을 재조명하는 글로
  '생산주의'-사회참여라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시각예술의 무장 해제: 무기로부터 스타일로 변천해 간 급진적 형식주의 / 애비게일 솔로몬-고도우

사진은 성별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 무엇이 전설을 만들었나: 짧고 슬픈 다이안 아버스의 삶 / 캐슬린 로드
- 어머니로서의 자연, 그리고 말보로 맨: 풍경사진의 문화적 의미에 대한 한 탐구 / 데보라 브라이트
- 그래픽을 통해 본 욕망의 우선 순위: 중산층 여성지의 현대화, 1919-1939 / 샐리 스타인
- 동성애의 맥락: 소수집단의 자기 표현에 관한 문제들 / 잔 지타 그로버

사진은 어떻게 국가와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 기업 연감과 사진 / 캐롤 스콰이어즈
- 드러난 이데올로기와 숨은 이데올로기: 혁명의 두 이미지 / 에스터 패라다
- 미국 동부에서: 리차드 아베든 주식회사
(*최근 상업 사진가들의 예술사진 및 다큐 사진계의 진출이 활발한 우리의 현실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듯한 글!)

사진적 진실의 정치학은 무엇인가
- 사진의 담론 공간들 / 로잘린드 크라우스
(*앗제의 사진은 과연 어떠한 진실을 담고 있는가?)
- 다큐멘터리 사진론: 그 속에서, 그 주변에서, 그리고 그 후에 / 마사 로슬러
(*다큐-타인의 삶을 담는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담론 속에서 움직이는가!)
- 몸과 아카이브 / 앨런 세큘러
(*초기 사진사에서 가장 큰 업적이면서도, 정작 사진사에서는 소외받는 경찰/기록 사진에 대한 논의!)


ps. 사진 관련 비평 서적을 읽을 때 마다 점점 사진 한 장 남기기가 힘들어지는 듯 하다.
    사진에 대해 탁월한 비평을 남긴 수잔 손탁도, 그래서 평생 사진을 찍지 않았던게 아닐까.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트레이터(Traitor, 2008),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 2007)

[적들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2001년 9월 11일 100여층짜리 고층 빌딩이 무너져내리는 장관을 생중계로 지켜보는 주변의 반응은
무척이나 상이했던걸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며 안타까워 했고,
누군가는 미국이 희생한 수만명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며 통쾌했다. 나와 친구들도 각 입장을 두고
격한 감정 싸움을 벌인 기억이 있다. 미국 시민이었다면 일단은 무조건 전자의 입장을 취해야 했겠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인 까닭에, 미국을 바라보는 애증의 시선이 그때처럼 극명하게
교차했던 적도 없었다.

 사건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헐리우드도 시류를 타서, [왜 적들은 우리를 미워하나?]를 묻는 영화들을 대거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걸작으로는 스티브 개건이 감독하고, 조지클루니가 열연한 <시리아나, Syriana 2005> 가 있고,
소위 '헐리웃 공식'과 이러한 주제를 접목시키는 영화들, 에드워드 즈윅의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7>
제이미 폭스가 열연한 <킹덤, The Kingdom, 2007>등이 개봉했고,  굳이 이들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 많은 영화들에서도,
중동 및 이슬람권을 분쟁 지역-미국에 적대적인-의 코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아이언 맨, Iron Man, 2008>에서도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한다)

 세계 영화 시장을 선도하는 헐리우드 답게, 영화에 절묘하게 녹여낸 [미국의 적] 코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전 세게를 누비며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듯 보인다.
하지만 추상적인 선/악 구도를 제시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구체적인 '미국'의 입장들을 두고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까닭에, 미국인이 아닌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의도와 달리 냉정한 시선의 차이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한편, 여전히 상당수 중동 및 이슬람권 국가들은 미국 영화의 수입과 상영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예루살렘 쟁탈전을 소재로 화해의 메세지를 전달한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
은 많은 중동국가들에서 상영이 허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이하 소개할 영화 <트레이터, Traitor, 2008>와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2007> 역시 위에서 소개한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이며, 영화의 시선이 미국인들에게로 향할때와, 미국 밖의 사람들(여기서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로
향할 때 발견되는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하다.


트레이터(Traitor, 2008)
감독 : 제프리 나크마노프
출연 : 가이 피어스, 돈 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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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버스테러를 계획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맞서,
테러를 저지하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고도의 훈련을 받은 폭탄전문가, 돈 치들)의 이중간첩 스릴러.
많은 이중간첩물이 그러하듯, 성공적인 침투를 위해 주인공은 아군에서도 소수에게만 알려진 극비의 존재이며,
그의 존재를 아는 소수가 그를 배신하거나, 죽임을 당함으로서, 결국 주인공 스스로 양쪽 모두의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는 플롯을 따라가고 있다.

 [이중간첩]플롯에 [미국의 적]코드를 접목시키기 위해,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슬람원리주의자들과 미정부 요원들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복수를 위해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타락한 인물, 혹은 지나치게
순진해서 고뇌따위는 없는 단선적인 인물들로 그려지며, 주인공을 비호하는 미 정부 요원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소수 인명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료주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서 영화가 취하는 시각은 주인공을 둘러싼 양쪽 인물들을 제거해(죽여)버림으로서, "그 어느쪽도 답이 아니다"
라는 양비론을 택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주인공의 손에 묻힌 피는 정당화 되고, 미국은 다시 한번 (테러를 막음으로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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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주인공


 영화는 주인공을 통해 "인명을 살상하는 방법으로 동족들을 구원할 수 없으며, 이는 이슬람 율법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를 역설하며, 이러한 고뇌속에서 주인공은 이슬람 성자인 동시에, 미국의 수호성인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다만, 나름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역설되는 이같은 주장이 미국을 벗어나 설득력이 있는지 살펴볼 일인데,
애초에 주인공은 아프리카 출신이지만, 미국 국적에,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남은
아버지의 죽음도, 미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의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인공은
 출신과 믿는 종교에서 [미국의 적]들과 공통될 뿐이지, 미국에 대해 하등의 복수심 따위를 가질 이유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아프리카계 이슬람교인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 않은가!)
이런 주인공에게 "동족"이라는 개념은 단지 이슬람 신앙으로 극복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범위로 보이며,
애초에 위처럼 나이브한 결론을 내리고 미국을 구원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리라고 본다.

 결국 영화는 애초에 고뇌따위 할필요가 없는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그럴듯한 갈등과 스토리로,
[미국의 적]들에게 평화의 메세지를 역설하기에 다름 아니고, 이것이 '미국産-미制'가 갖는 한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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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다만 영화가 갖는 소기의 성과라면, 아프리카계 흑인 미국 시민인 주인공에게,
FBI요원인 가이 피어스의 입을 빌어 "미국이 자네에게 많은 빚을 졌네" 라고 인정하는 것 정도랄까?
이부분은 묘하게 오바마 미 대통령이 떠오른다.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 2007)
감독 : 폴 해기스
출연 :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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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내 인종문제를 다룬 <크래시, Crash, 2004>의 폴 해기스 감독이 이번에는 이라크전을 치룬
미국 젊은이들의 트라우마를 재조명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는 "엘라의 계곡"의 은유는
전쟁(골리앗)이라는 거대한 공포와 적에 맞섰던 한명 한명의 미국 젊은이(다윗)로 풀이된다.
전쟁에서 승리했고, 살아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상처는, 되돌아 온 평온한 현실에서
그들이 짊어지기엔 너무도 무겁고, 견디기 힘든 것이며, 나아가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희생'되어야만 하는지를 영화는 묻고 있다.

 다만 지금 리뷰를 작성하는 관객이 검은 머리의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는데, 미국 주변의 국가들이 느끼기에, 미국 젊은이들은 "다윗"
이라기 보다는 "골리앗"이고, 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미국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타국 사람들의 숫자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가 휘두른 폭력과
그 국가에 속한 개인의 희생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면 영화는 무고한 미국의 '개인'
들이 '무엇을 위해서(석유든, 후세인이든, 화학무기든 간에)' 부조리하게 희생되었는지에 대해서
최소한의 설명을 했어야 했다.

 즉, 영화는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왜?"에 대한 해명은 없고, "희생"에 대한 강조만 하고 있기에
, 제3자인 한국의 검은머리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아마도 이같은 사정을 고려했기에, 국내에는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라크전을 다루는 영화들이 미국 내에서도 거듭 흥행에 참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수지안맞는 이라크전영화    http://movie.naver.com/movie/mzine/read.nhn?office_id=140&article_id=0000009195 )

 토미 리 존스의 절절한 부정 연기와 여전사에서 돌아와 간만에 열연을 펼치는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드라마로서는 훌륭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머나먼 타국의 관객에게 설득하기엔,
미국에 대한 애증의 골이 너무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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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달린 성조기마냥 미국은 총체적 난국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