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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티스토리로 옮김...

텍스트큐브와 블로거의 통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가 보다.

 

글하나 쓸려는데 계속 통합/이전 페이지가 뜨는 통에....

 

 귀찮아진 김에 티스토리로 옮겼다..

 

 http://nuguges.tistory.com

 

 별 내용도 없는 블로그지만...난민도 아니고....

 

 매년 옮겨다니는 것 같다..

 

 cafe24에 제로 보드 깔아 쓰다가, 텍스트 큐브 깔아쓰다가..

 

 계정 용량문제로 텍큐로 왔다가.., 이제 또 티스토리로....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20101128

 

일요일 저녁, 칼국수집에 남았던 평균연령 40을 훌쩍 넘긴 6명의 아해들은...

프롬나데로 몰려가서 나란히 핫초코 6잔을 주문하고는..

초코칩 과자를 세번이나 리필하면서 수다를 떨었고...

 창밖으론 눈이 내리다 그치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머릿속엔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쩝..-.-

 

2010년 6월 20일 일요일

다문화 가정, 그리고 한스하케의 독일 주민에게 (DER BEVÖLKERUNG)

 최근 L모 기업에서 그룹 이미지 광고로 다문화사랑 캠페인 TV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이미 농어촌은 한국인 신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참 시기 적절한 광고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 과연 십수년이 지났을 때,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될지 걱정스러운 생각도 든다.

 

특히나 우리처럼 나면서 죽을때까지 "한민족"을 강조하는 나라라면 더더욱...

 

십수년내에 커다란 사회 갈등의 요소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무척 크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 광고를 보면서 내내 머리속에 떠다니는 작업이 있었는데,

 한스하케의 <독일 주민에게 DER BEVÖLKERUNG>이다.

 

 한스 하케는 소위 "정치적 예술"이라 분류되는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작업을 하는데,

 

대체로 미술과 자본의 관계, 그리고 독일의 역사의식들에 대한 작업이다.

 

그중 <독일 주민에게>라는 작업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2000년 찬반 양론 끝에

 

 독일 국회 건물에 설치된 것이다.

 

국회건물에 새겨진 <독일 국민에게>

한스하케의 <주민에게>

 

 

 자세한 내용은 김인혜(국립현대미술관학예연구사)씨의

 

 <한스 하케의 DER BEVOLKERUNG - : 미술과 정치, 서로 말걸다.> 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빌헬름 2세 시절 독일 국회건물에 새겨진 "독일 국민에게"라는 글귀는 독일의 제국주의의 상징이며,

이후 나치가 사용했던 '국민', 혹은 '자국(게르만)민족'의 신비화에까지 닿아있는 글귀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 맥락의 '국민'이라는 단어보다는 '주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스 하케의 주장이다. (유태인학살의 과거와 네오 나치 등의 게르만 중심주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독일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주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국회 벽에 새겨진 "국민에게"와 똑같은 글씨체로 "주민에게"를 써서 국회 안뜰에

화단을 꾸며놓은 것이었다.

 

 

 "국민"에 대한 한스 하케의 주장-"주민"-은, (비록 독일은 2차대전의 가해자라는 차이는 있지만)

 

우리의 유별난 "민족"과 "국민"의 강조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월드컵 열기로 온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 "대~한 민국"을 외치는 요즘,

 

비록 60여년전에는 역사의 피해자였지만, 지금 우리는 어쩌면 이미, "민족'과 "국민"의

 

가해자가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한스하케 작업에 대한 자료. (밍군 작성)

2010년 6월 14일 월요일

옥수 12, 13지구

 매일 일산(이라기보다 벽제에 가까운)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던 동생 내외가

 

 서울 옥수동 극동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지난 현충일  잠시 들러보니, 바로 맞은편에 옥수동 12/13 지구 재개발현장이 바라보인다.

 

작년 6월말에 옥수동 재개발 현장을 찾았으니, 벌써 1년여가 흘렀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던

 

그곳은 이제 깨끗하게 흙무덤이 되어 새로 올려질 아파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재개발, 아파트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커져가는 이때,

 

 과연 저기 벌거벗은 땅에 걸린 사람들의 희망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잠시 아파트 난간에 몸을 맡기고 생각해본다.

 

 

작년 사진들 보기.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새해, 그리고 아버지.

 

 음력 새해 첫날 아침.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첫 메달 소식 - 5000m 빙속 이승훈선수의 -이 들려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그리고 나도) 각자의 위치에서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머니와 (덩달은 나의) 짜증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고집을 꺽을 수 없어,

차례가 끝난 후엔 거듭 왕할머니(할머니의 이모) 제사도 지내야 했고, 치매와 더불어 담도세포암으로 요양 병원에서 계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득불 집에서 하루 재우겠다고 하여 요양병원에도 다녀왔다.

 

 결국 아버지의 바램-하룻밤 재워드리고픈 효도는 할머니가 담도에 삽입된 관(몸에서 나오는 진물을 제거하기 위한)을 잡아당겨 반쯤 나오게 만들어버리면서 급히 요양병원으로 되돌아가면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고집 덕에 매년 전쟁터가 되어버리곤 하는 명절. 서로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가도 이내 아무일 없던듯 말은 건내곤 하는......가족이라는 건 참 단순하지가 않다.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Art History


John Baldessari <Igres and Other Parables> 시리즈 中 <Art History>

 

원문보기

 

 젊은 예술가가 예술학교를 막 졸업했다. 그는 교수에게 다음에 할 일을 물어보았다. "뉴욕으로 가게" 교수가 대답했다. "모든 갤러리에 작품 슬라이드를 들고 다니면서 전시해 줄것인지 물어보게." 예술가는 그렇게 했다.

 

 그는 슬라이드를 들고 갤러리들을 돌아다녔다. 각 디렉터들은 한장씩 슬라이드를 집어 들었다. 좀 더 잘 보기 위해 빛쪽으로 들어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너무 촌스럽네요." 그들 모두 이야기 했다. "당신은 주류에 들지 못해요.", "우리는 예술사적인 것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그는 노력했다. 뉴욕으로 옮기고, 끊임없이 그리고, 거의 잠도 자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박물관, 미술관 오프닝, 스튜디오 파티, 예술가들의 주점 등에 참가했다. 예술에 관련된 모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예술에 대해 꾸준히 읽고, 여행을 했다. 그는 쓰러졌다.

 

 그는  두번째로 슬라이드를 들고 갤러리들을 찾았다. "아" 이번에 갤러리 디렉터는 이야기했다. "당신은 마침내 미술사적(Historical)으로 되었군요."

 

 교훈: Historical은 Hysterical로 잘못 발음된다.

 

 주1) 존 발데사리의 1967-71년 작업 <Ingres and Other Parables(앵그르와 다른 우화들)>은, 텍스트와 사진 이미지가 결합된 작업으로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미술세계에 얽힌 우화같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주2) 최근, 사진을 미술사적(Historical)으로 탐구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고 있다. 한데 내가 받아들이기에 내러티브보다 형식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경향이 뚜렷해 보여서,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지고 있다. 시도 한다면, 분명 눈에 띌만한 성장이 기대가 되긴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진에 깊게 발을 들이거나, 혹은 내가 추구했던 것으로(그 추구했던 것이 무언가 이룩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돌아올 타이밍을 잃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뭐 될대로 되라지.

2009년 9월 12일 토요일

상도4동 산65번지 (상도11지구)

상도 4동 산65번지. 두어달 전쯤 65억원대 재개발 로비가 드러나면서 시끄럽기도 했고,
대지주/건물주가 따로따로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에 이슈가 되는 곳이란다.

이곳의 상황을 아는대로 요약해보자면, 대지는 지덕사-양녕대군종친회 소유이고,
재개발을 노리고 들어온 투기성 무허가 건물주들이 조합을 만들어 2007년 동작구청으로부터
재개발 인가를 받아냈다. 한편 지덕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건물주와 세입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
재개발이 아니라, 자기 소유의 땅에 건물을 새로 짓는 '민간'재개발을 추진을 하기 위해서,
재개발 인가 취소 소송과 동시에 철거용역을 동원해 건물 철거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건물을 헐고 나대지로 만들어 버리면 '민간'재개발은 누워서 떡먹기가 되므로)


641번을 타고 대림아파트 앞에서 내려 시장을 거쳐 30여분을 걸어 올라갔다.
오르는 길가에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나치며 엿들어보니,
대체로 재개발, 보상, 철거,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듯 했다.

길을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담장이 있는 번듯한 3층 4층 집들이 사라지고,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낮은 집들이 산등성이에 따닥따닥 몰려있다.
지적도에 표시나 될까 싶은, 이게 길이 맞을까 싶은 조악한 계단과 흙길이 그 사이로 얽혀있다.

군데군데 무너진 집들과, 흘러내리는 골재를 막기 위한 검은 그물들. 그리고 과격한 구호들.
지난 2월부터 지리하게 기습적으로 건물을 헐고, 몰아내기를 반복한 탓인지,
철거된 골재위의 검은 그물 사이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좀 더 올라서 내려다보니, 풍경이 참 처참하다. 검은 그물과 드러난 붉은 흙들 사이로 보이는
아직도 남아있는 집들. 지난 여름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의 녹음이 무심하게만 느껴진다.





이미 사람이 떠나간 어느 집. 덩그러니 놓여진 아이들 장난감이 안스러운 가운데,
문 앞 마당에 던져놓은 검은 그물은, 이곳도 곧 헐어지고 말거라는 예고장처럼 느껴진다.



 살던 이들은 떠나가고, 살던 건물들도 허물어졌지만, 남아있는 이들은 어떻게든 지내고,
또 버텨내야 할 터. 무너져내린 건물을 따라, 심어놓은 화분과, 일궈놓은 텃밭, 검은 그물사이로
솟아나와 헝클어진 호박넝쿨들이 여기 사는 이들의 희망을, 의지를, 소망을...
그리고 그렇게 감내해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을 드러낸다.

2009년 9월 6일 일요일

화이트 박스@세상의 숨결

지난 8월 30일 막을 내린 상상마당에서 진행한 SLAP-세상의 숨결 전시 中.....






 전시장 구석, 내 사진이 걸린 모퉁이에 등장한 흰색 상자.

상자 앞에서 고개를 갸웃 거리는 관객들도 있엇지만..

대체로 무심하게 놓여진듯한 상자.

상자 안에는 물론 담배로 만들어 태운 상상마당 건물 모형이 들어있다.
(관련 이야기 - Welcome to 상상마당 )

지난 석 달 동안의 결실들을 지켜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어보다.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그리고 달력

 

잡설: 미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는 무엇인가?(열기)


 

 

2009년 8월 6일 목요일

welcome to 상상마당 진행 현황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화요일 상상마당측에 메일로 내 작업 의도를 전달을 했고, 그날 오후 내부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회의 전 매니저님과 전화 통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상상마당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클로즈업컷 위주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회의 결과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할 수 없다고 한다.

앞서 밝힌대로, 목적 하나는 달성인 셈이다.. 결국 KT&G의 예술 후원의 진정성이 드러나고 만....
(물론 관계자분들의 의도는 논란이 될만한 일은 만들지 말자..겠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라고 본다.
후원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나니, 게다가 클로즈업컷 진행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터에 왠지 허용되는 한에서 장난을 쳐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면, 내겐 뭐가 남지. 어디 가서 외칠 곳도 없는 'KT&G 예술 후원의 진정성?'  뭔가 비틀어야 한다.

 머릿속으론 갖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 전시 자체를 보이콧 하거나..
- 책자에 내게 할당된 페이지에 백지를 채운다거나....
- 대체 작업 곳곳에 담배를 숨겨둔다거나...
- 대체 작업 글 곳곳에 현작업 내용에 대한 글들을 섞는다거나....
- 전시 오픈날 상상마당 앞에서 1인시위?

하지만 이런 생각들 대부분은 어쨌거나 함께 전시하는 분들에게나, 혹은 매니저님들한테 피해가 갈 수 있는 일이라, 가급적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형태의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오늘 매니저님한테 전화해서 괴롭힌 내용이 아래와 같다.

- 아크릴로 만든, 불탄 상상마당을 전시 오픈일을 제외한 전시기간에 내 사진 밑에 두겠다..
- 현 작업이 불가한 이유를 공문으로 작성해 달라.


역시나 매니저님은 난감+쩔쩔매시고...이야기 하면서 아 이것 역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회의'를 통해 답변을 주겠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봤을 때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종일 고민한 것이, 누구의 눈에도 거슬리지 않고, 내게 의미가 될 수 있는게 무엇일까..였는데,

아크릴-불탄 상상마당-을 천으로 가려서, 전시장 어디든 구석에다 쳐박아 두는 것이다.
"앉지마시오" 정도 딱지를 붙여 놓으면 되겠지. 내 대체 작업 밑에 놓고, 꽃이나 올려 놓으면...
꽃이나 올려놓으라고 만들어 놓은 단인 줄 알테지...

나로선 거의 마지노선인 것 같다. 이게 안되면 정말 상상마당 앞에서 태운 건물을 들고, 기념촬영이라도 해야할 판.

나한테 괴롭힘 당하는 매니저님한텐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하니 상황이 나를 찐따로 몰고 가는 것 같다.
몰래 뭔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왕 정정당당히 양해를 구하고, 밝히고 하고 싶다.
괜히 엄한 사람 놀래키는 무뢰한은 되고싶지 않단 말이지.(이미 충분히 무뢰한인가!?)
제발 이번 안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ps. 이전 블로그에 들어와서 관계자가 확인하는 바람에, 심기가 불편해졌다해서 비공개로 바꿔두었던 글.

ps2. 구글 이전 기념으로 다시 공개로...설마 여기까지 찾아와서 보려나..^^;

ps3. 이 글 보고 관계자가 심기가 불편해져서 결국 전시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과연 전시때 어떻게 될런지.

 

welcome to 상상마당 (가제)

 지난 4월부터 KT&G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문화지원센터'인 상상마당에서 사진 강좌를 듣고 있다.

 SLAP(SangSangMadang Life-Art Photographer) 프로그램으로, 생활사진가 프로그램 정도로 보면 되겠다.

원래 수업의 목적은 기존에 찍은 사진들 중에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전시/ 출판까지 하는 것이지만, 이왕 하는 김에 이번에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진행을 했다.(그래서 상상마당 내부적으로는 교육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석달에 5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수강료이지만, 출판과 전시에 대한 부분은 100% 상상마당 측에서 지원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담배를 주제로 하는 다소 짖궂은 장난을 시도했다. 즉 상상마당의 모체인 KT&G를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작업 의도를 설명하자면,
 
 담배가 유해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담배를 만드는 사람과 담배를 피우는 사람,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현실에서의 답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담배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인 손실이 발생하지만, 그 손실의 비용은 담배를 피우고 건강을 해친 '개인'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진다. 혐연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담배회사를 나쁘다고 지적하기 보다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담배 회사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담배 회사들이 담배로 건강을 잃은 개인에게 보상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발 담배소송 소식이 들려오지만, 개인의 승소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고, 국내도 7년간 공방 중이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하며, 유럽의 경우엔 담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물론 담배 회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여론으로 국내의 경우를 보면, KT&G 복지재단, 상상마당 등등으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또 그 긍정적인 이미지는 고스란히 KT&G의 이미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활동에도 금연 캠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왠지 병주고 약주면서 생색까지 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근에 한국금연연구소를 후원하여 청소년 금연 캠페인을 벌이긴 했으나, 거의 1人 NGO인데다가, 이왕 피울거면 양담배 말고 국산담배! 를 외치는 한국금연연구소의 활동을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담배'라는 유해소비재가 '필요악'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흡연자들의 존재가 그것을 증면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 자체가 '좋은 것', '괜찮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일 뿐이다. 담배를 없애지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내가 수업을 듣는 상상마당의 (고마운)존재는, 각도를 달리해 보면, 결국 수많은 개인들이 피워올린 담배, 그 희생에 기반한 것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담배로 상상마당 건물을 만들어 태웠고, 그 장면들을 찍어 현재의 상상마당 건물의 모습과 합성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이같은 작업에는 나름 존경해마지 않는 한스 하케(Hans Haacke)의 모티프가 있다.
 1971년 한스 하케는 뉴욕 구겐하임에 초대되었고, 그 때 내건 작업이 구겐하임 미술관의 후원자인 샤폴스키 그룹의 맨하탄 부동산 소유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전시는 취소되었고, 담당 큐레이터는 해고되는 사태를 맞았다. (이 작업은 지난 광주 비엔날레에도 소개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를 한스하케에까지 비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과연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오늘 상상마당은 KT&G에 적대적(?)인 작업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 게임은 애초에 무척 불평등한 게임이다. 내 작업이 허용된다면,  어쨌거나 KT&G로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일이고, 만약 거부한다면, 결국 기업의 문화, 예술 후원이라는 것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위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셈이니, 나로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그런데, 사실, 기업 입장에서, 나따위가 그런 전시를 한다고 해서 과연 어떤 영향이 있을까? "그래, 뭐 저건 예술이니까. 누가 신경쓰겠어?" 라고 말하면 그만 아닌가싶다)

 지난 토요일 수업시간에 전시에 쓰일 사진 선정 시간이 있었고, 교수님과, 상상마당 관계자의 당황한 표정을 목격했다. 그리고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역시 극도로 보수적인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의 일원으로서, 관계자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도 있다.  앞서 말했듯, 어쨌거나 나는 목표를 달성할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게임이니까.

 그저 내 개인 작업의 성공(?)을 위해서 멀쩡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지금도 그 고민은 여전하다. 나는 그저 '공익'이라는 허울에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남들을 괴롭히는 '진상' 혹은 '찌질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최소한 KT&G의 예술 후원의 '진의'를 떠보는 의의는 가지지 않을까 싶다.

2009년 5월 28일 목요일

회색인

 
2004년 3월 13일

2004년 3월 13일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종로로 모여 촛불을 켰다.
나 역시도 권력에 눈이 멀어 멀쩡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못난 심보에 무척이나 화가 났고, 종로에 나아가 '탄핵 반대'를 목이 쉬도록 외쳤더랬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났다. 나는 어느덧 '지성'에 목마른 청년이 되어있었다.
 사회주의 세계사라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도 어설프나마 완독했고, (시각 예술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이미지의 정치학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알아갔고, "한스 하케"나, "수잔 레이시"와 같은 공공성과 참여를 강조하는 작가들을 접하면서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어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고, FTA를 둘러싸고 광우병 촛불이 점화되었다. 100여일 가까이 촛불이 밝았다.
하지만 4년여간 '많이 공부한' 내가 촛불을 보고 떠올린 것은 '파시즘-집단적인 과격함'에 대한 환멸 혹은 공포였다. 또는 몽매한 대중이 또다른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는 냉소였고, 또는 대안이 없는 반대일 뿐이라는 도피였고, 나는 이러한 역학 관계에서 냉정을 잃지 않으며 휘둘리지 않는다는 비겁함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일 영결식을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한다는 생각으로 영등포 구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5년여 전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 코를 찌르는 향내와 짐짓 숙연한 분위기에 괜시리 눈 밑이 화끈거렸다.

 내일 영결식이 끝나고 나면 정권 타도를 외치며 촛불이 타오를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노무현이 과연 영웅인가. 정권 타도가 해답인가. 분노만이 유일한 방법인가. 5년전의 뜨거웠던 가슴엔 쟂빛 의심만이 가득한 채로 말이다.

2009년 4월 27일 월요일

아현4구역, 재개발, 그리고 사진.

 지난 1월 용산참사 이후, 언론과 인터넷 상에서는 과격시위와 강경진압을 놓고 한동안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철거민들을 옹호하는 논리는 주로 그들이 처한 현실적 절박함을 이야기 했고,
그에 맞서는 사람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류의 원칙론을 펼쳤다.
양쪽 모두 그럴듯해 보이는 논란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무의미한 양비론을 제외하면) 나는 과연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심정적으로 '사회적 약자'라고 칭해지는 철거민들의 편에 쏠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사태를 조금 냉정하게 살피자면, 갈등의 주된 주체인 (집주인들의)조합과 세입자를 비롯
시공사, 관련 행정 기관까지 각자의 '이득'을 위해 밀고 당기는 데다가,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경제 논리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편을 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굳이 절대惡을 뽑자면, 조합이나 세입자들과는
이해 관계가 없는척 하면서, 손안대고 코풀자는 식의 시공사를 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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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한 현실에, 복잡한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곰곰 생각해보았고,
해서 내린 결론이 재개발 현장에 가서

떠나간 이들의 행복을 빌어줄,
떠나올 이들의 행복을 빌어줄,
남아있는 이들의 갈등을 덮어줄,
(그리고 공사현장사람들이 난데없는 돌무더기에 살짝 당황했으면 싶은)
(그리고 내 자신의 조그만 표현이 되어줄)

 '돌탑'들을 쌓고 오는 것이었다.
(두달여전부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오다 마침 주말 사진 포트폴리오 수업이 계기가 되어
 움직일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받았다)

 지난 일요일 저녁엔 아현 4구역에 들렀다. 애오개역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구역으로,
만리동고개로 이어지는 달동네가 위치한 곳이다. 고등학교 시절 달동네 꼭대기의 <환일고>에 오르느라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렸던, 하교길이면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 사이사이로 비탈을 달려 내려오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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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시간 여 정도 재개발 구역을 둘러보며, 여기저기 돌탑을 쌓다보니,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날도 어둑해져
돌아갈 채비를 하던 중, 문득 뒤쪽 집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복실아, 복실아, 이리와!"

 순간적으로 현장 관계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번 제지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헐어진 벽 뒤로 몸을 숨기고, 인기척을 죽였다.

 "복실아, 이리와! 안돼!...어어.."

이리저리 헐어진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던 '복실이'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이 노출되고 말았고,
 쌓던 돌을 밀어놓고,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진 찍을 구도를 잡는 척 했다.

 "사진 찍으러 오신거에요?"

 "아, 예..안녕하세요.."

 "나도 인터넷에다가 종종 사진 올리지만.. 거, 옛날 추억 이런거 말고, 여기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나가는 사람들 그런거 좀 찍어봐요.. 난 여기 안살지만, 여기 다 수십년씩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인데,
 평당 800씩 주고, 자기네들은 평당 1600씩에 분양하면, 서울 어디가서 살라고..."

현장 관계자분은 아닌가보다. 일단 다행.

 "그쵸..정작 원래 살던 사람들은 못들어오는게 재개발이죠.."
 
 "재개발 몇년전부터 부동산들 들어와서 다 쪼개놓고, 조합은...이건 완전 브로커야,
 건설사하고 주민들 사이에서 조합이 다 해먹는다고...
 세입자들 이사비용 700, 800씩 집주인들이 다 해준거라고..."

 "요 앞에 3구역 조합임원들 100억원 해먹었다고 엊그제 났더라구요..."

 "내가 엊그제 세봤는데, 아직 헐리지 않은 집에서 30%정도는 남아있는 것 같아....
 에휴..재개발 이건 완전 잘못된거라고..누구 좋으라고 하는건지 원...
 복실아! 이리와! 이렇게 사람 좋아하는 강아지를 누가 문다고 하는건지....
 지가 해코지하려니까 무는거지..암튼 조합놈들.... 그럼 수고해요.."

 "예, 들어가세요.."

 마저 돌탑을 쌓고, 사진을 남기고, 길을 걸어 내려가던 중, 복실이네 집 할머니를 만났다.

 "조합에서 나왔어? 아직 안헐린 건물들 있으니께 헐어내라고?"

 당황한 마음에 대충 둘러댔다.

 "아뇨, 인터넷에 올리려구요."

 "어머니, 그냥 작품 사진 찍으러 오신 분이에요"

 아까 그 남자의 말. <그냥 작품 사진>. 부끄럽다.

 "내가 억울해서 못나가, 평당 800씩 받고 어떻게 나가, 서울 어디가 평당 800이여,
 요 앞 3구역은 엊그제 뉴스에 났던디, 우리도 함 나야제..."

 저 위에 돌탑들을 내가 쌓았노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데, 변명하고 싶은데,
 내 나름의 실천이라고 생각했건만, 정작 현실의 사람들과 만났을 때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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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들어가세요, 그럼 수고하세요"

 "예, 안녕히 계세요...."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실'의 사람이 지닌 강력함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논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헌책방 득템~^^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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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흙'서점에서 건져올린 것들.
푸코의 추는 처음에 하권만 눈에 띄는 곳에 놓여 있길래 '상권 없으믄 어떻게 사라고' 싶었는데,
헌책방 정 반대편 구석에서 상권을 발견.. 쾌재를 부르며 구입.
움베르토 에코의 <전날의 섬>도 상권만 보이던데... 하권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포기.

<현대미술의 전략>은 약간 미학 오딧세이 풍의 현대 미술에 내재된 현대 사상들을
정리해놓은 것인데... 이런류를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겸손한 마음에서 한 권 구입...

<신화의 힘>은 비교 신화학자 '조셉 켐벨'에 대해서 어딘가 줏어들은 풍월이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한 권...

중요한건 이 모두가 12,000원이라는 것!
요새 책값 기준으로 간신히 한 권 살만한 가격이라는 거^^

2009년 2월 11일 수요일

간만에 여유로운(?) 출근길

 그룹에 내려온 출장 협조 공문.
 
출장자를 정해야 하는데, 이사람, 저사람 떠돌다가,
결국은 "짬"밥순으로 줄을 세우다보니, 막내인 내가 출장을 가게 되었다.
출장지가 안양이라 딱히 멀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달랑 혼자 가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일인지라, 누군들 반가워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간만에 여유로운(?) 출근길을 느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별 일 아닌 일이겠지만 오랫만에 겪어보니 사뭇 새로운 느낌에 글과 사진으로 남겨본다.

 매일같이 am 5:40 에 집을 나서다가, 간만에 6시를 넘긴 시각(정확히는 am6:40)에 집을 나서니,
6시에 일어나서, 씻고, 떡도 하나 집어먹고, 웹서핑도 잠깐 해주고, 카메라까지 챙겨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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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시가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이르긴 한 시각인가보다. 한산한 지하철역. 아니 오히려 6시 무렵 즈음에는
상대적으로 드문 지하철 덕분에 기다리는 인원은 오히려 더 많은 듯 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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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신도림 역. 역시나 한산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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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역에서 안양예술공원행 입구행 마을버스를 탔다.
약 20여분 차이로 날이 많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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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유원지입구에서 출장지인 '블루몬테'유스호스텔까지는 도보로 15분 남짓.
길을 오르다보니 '1평타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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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도대체 탈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놀이용 기차가 스산하게 느껴지는 안양예술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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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출장은 무사히 잘 마쳤고, 퇴근도 평소보다 조금은 빨리 했으니 나름 만족.
쓰다보니 참 알맹이 없어보이긴 한데... 매일 6시대에 통근버스서 졸며 출근하다가,
간만에 오전 7시대에 지하철로 출근해보면 신기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니, 이해들 해주시길..^^

2009년 2월 4일 수요일

커피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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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녹두'를 벗어나 홍대/종로 쪽에서 데이트 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만화방을 밀어내고 새로운 데이트 코스로 급 부상중인 커피숍....

제대로된 커피를 마시려면 제대로 된 CAFE를 찾아가라고는 하지만...
스타벅스, 파스구찌 등으로 대표되는 캐쥬얼 커피샵은 오며 가며 종업원이 맞아주는 귀찮음이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둘이서 한잔을 시켜도, 아니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도
뭐랄 사람이 없는 까닭에 다소 시끄럽다는 것(번화가에 위치한 경우)을 제외하고는
가격대비 시간 때우기에 그럭저럭...
(스타벅스는 현대 미니카드로 사이즈 업까지 가능!^^)

ps. 그런데 커피는 아무리 마셔도..그냥 쓰다 달다 밖에 잘 모르겠다..-.-
주로 까페모카를 마시는데.. 휘핑크림이 퐁당하고, 커피가 식으면서
둥둥 떠다니거나, 혹은 가라앉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커피도 상당히 마시기에 걸끄러운 것이 된다는 느낌이 든다-.-

2009년 1월 5일 월요일

헌책방에서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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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에서 회식을 마치고 사당을 들러 집에 오던 중, 낙성대서 식사중인 밍군과 잠깐 헌책방서 데이트....
 
 헌책방의 책들이 늘 거기서 거기인지라 그닥 기대를 안하고 있었는데...

 무심코 지나치다 눈에 띈 얇은 책 <대중매체시대의 예술>

 이미 한번 읽은책이고, 밍군에게도 있는 책이라 사실 다시 살 필요는 없긴 했지만,
 
 정가 3000원 중고가 1000원에 이런 책을 구한다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  (구할 때는 그렇게 없더니!)

 그리고 계산대로 향하던중, 분류없이 계산대 위에 쌓여있는 책 가장 위에 올라가 있던 책

 존 버거의 way of seeing 시리즈인 <이미지 - 시각과 미디어> 오예!

 절판되거나 구하기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현재 정가 12,000원, 헌책방 가격 4,000원이면 거저!

 (문득 예전에 잃어버린...식당에 놓고 나와버린 존 버거의 Way of Seeing이 쓰라리게 느껴진다..ㅠ.ㅠ)

 그리고 시네-페미니즘 은 딱히 유명한 책은 아니지만, 영화평론들을 어떻게 해놓는지 궁금해서 한권 추가!

 \1,000 + \4,000 + \4,000 = \9,000 ^-^

 그리고 이 모든걸 밍군이 사주었다는 사실^-^ 데이트도 하고~ 득템도 하고~ 랄라랄라~♪

2008년 11월 1일 토요일

Drug Synd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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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몸이 거의 종합병동 수준으로 좋지 못한데, 10월초 비엔날레 후유증인 몸살로 시작해서,
내 인생 최대의 구내염(입술 빵꾸)에 걸리는가 하면, 이어서 새끼발가락과 넷째 발가락 사이에
어마한 크기의 물집이 생겨버렸다. 문제는 이놈이 이주일이 되도록 번져가고 있다는 것.
덕분에 근 한달째 항생제를 입에 달고 사는 중인데...덩달아 근 한달째 무기력증 및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몸살이나 구내염은 병명이라도 정확히 알고 있으니, 어쨌거나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는 지 쉽게 알 수 있는데,
발가락 사이에 커져만 가는 물집은 보는 곳 마다 진단이 다르니 난감할 따름.

 회사 의원에서는 '확실친 않지만 무좀인듯-.-?'
 동네(홍대입구) 제법 유명한 피부과에서는 힐끗 보더니 '땀샘이상에 의한 한포진'
 그 유명한 계피부과에서는 '습진'


세 군데를 돌아다닌 덕분에 약봉투가 제법 두툼해졌는데, 털어놓고 보니 위만큼 되더란 말씀.
그렇다면 이 돌.팔.이 들이 대체 무슨 약을 쓰고 있는지 알고나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약학정보원(http://www.health.kr/)에 가면 약에 표시된 식별표시 등으로 약품 검색이 가능하고,
약 이름만 알아내면 용법, 효능, 부작용 등은 쉽게 검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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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디세텔정 :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사용, 즉, 설사약(지사제).
b. 세프라딘 : 편도염, 인두염, 요도염, ...(중략)... 농양, 종기 등에 사용.
                   즉 만병통치 항생제로, 근 한달간 먹은 항생제의 주종이다.
                   문제는 부작용에 '설사'가 있다.
c. 스티렌정 : 위궤양 치료제. 세프라딘을 처방할 때 따라다니는 위장약.
                   그런데 내가 필요한건...장약(지사제)이란 말이다--;
d. 단젠정 : 소염제, 즉 붓기 가라앉히는 약
e. 알게나정 : 제산제. 항히스타민제제의 소화불량을 방지하기 위한 약.
f. 지르텍 플러스정 : 코막힘, 재채기, 콧물, 눈 및 코의 소양증(간지러움)에 처방하는 약
                            약효는 전혀 체감이 안되었고, 다만 간지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는 있다.
                            (간지러운 증상이 없다고 했는데도 처방해줬다--;)
                            졸음이나 진정작용이 '거의' 없는 훌륭한 약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난 이 약을 먹고 정말 하루종일 머릿속이 텅 비어 지냈다.
                            용법은 성인 1일 2회인데, 1일 3회 처방해준 회사 의원은 대체....
g. 타가메트정 : 위염, 위궤양 치료제. 역시 세프라딘에 따라온 것.
h. 레미코트 서방성 캅셀 : 항 히스타민제, 즉 알레르기 치료제로, 습진 등에 사용되는 약.
                                   부작용에 졸음이 있는데, 그래도 좀 덜한편.
i. 록소드펜정 : 소염제.
j. 피디정 : 부신호르몬제. 역시 알레르기나, 피부질환등에 사용되는 약.
             다행히 내게 해당되는 부작용은 없는듯.
k. 니소론정 : 부신피질호르몬제. 역시 피부약이다.
             광범위하게 쓰이는 스테로이드 제제로 장기복용하는 사람들도 많은듯 하다.
             용법이 1일 5~40mg인데, 30mg이나 처방해주는 홍대앞 병원...역시..먹고나니 졸렸다-.-
l. 알제틴정 : 항 히스타민제, 역시 알레르기 및 피부질환 졸음 및 설사의 부작용.
m. 아벨라정 : 소화제. 어린시절 자주 본 기억이 있는걸로 봐서 꽤나 오래된 약인듯.
n. 에세푸릴 캡슐: 지사제. 개인적으로 사먹은 것-.-

저 중에서 최악은 지르텍 플러스. 정말 마약이 아닐까 싶을 정도.
근 한달간 복용한 세프라딘덕택에, 지속적인 설사에 시달리는데. 왜 병원에서는 위장약만 지어주는걸까.
우연히 다른 약에 섞어 먹은 락테올(장약)이 기가막히게 듣두만. 장약이 필요하데도, 위장약만 지어주는..

하루하루를 각종 약의 부작용들을 임상실험(!?)하다보니, 졸음, 설사, 피곤 등에 덩달아 나타나는
신경질, 무기력 등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덩달아 피곤해지고 있다. 이번 아픈 것만 나으면 운동도 하고,
체력을 길러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병이 나아야 말이지..ㅠ_ㅠ 암튼 모두 건강합시다!!!!


ps. 근본 원인은 아무래도 수면시간인듯 한데,(2시취침 5시 기상을 1년내내하고있으니.. 주말도 바쁘고..)
     이건 참..해결이....쉽지 않다.--;;
ps2. 적고보니 저 약을 동시에 다 먹고 있는 듯 보이는데, 하루하루 나눠먹은 것이고..
     대체로 처방이 항히스타민/부신호르몬제인듯 해서, 가장 약한(?)처방인 계피부과 약을 먹기로 했다는..^^

2008년 6월 21일 토요일

사진정리..

연일 주말에 밖으로 쏘다니며 달리다가, 드디어 농축된 피곤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통에,
오후 1시가 넘도록 늘어지게 침대에서 뒹굴었다. 그리고 오늘은 집에 콕 쑤셔박혀 있기로 결심.
(물론 그 와중에도 영화 시간표를 뒤적거리며 I'm not There가 어디서 하는지 두리번 거렸지만...)

해서 간만에 시간이 생기니, 그간 쌓여있던 필름들도 정리하고, 그간 읽은 책들도 다시 한번
살펴보고...사람이 여유가 생기더란 말씀. 역시 사람이 마냥 달리면서 살수는 없는가보다.

방구석에 쌓여있는 필름을 정리하려고 필름첩을 꺼내들었는데,
필름첩 위에 놓은 필름은 대여섯 롤 정도..

'생각보다 많이 찍지는 않았구나..'

하며 필름첩을 열었는데..이런..스무롤 이상의 정리되지 않은 필름들이 우루루 쏟아진다.

'많이 찍기는 많이 찍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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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필름을 시작한 까닭이, 디지털카메라가 만들어내는 무분별한 이미지들-너무 많아서 수습할 수 없는-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이미지 갯수를 줄이고, 나중에 다시 한 번 돌아볼만한 기록을 만들어 보자는 의도였는데...
이런...-.- 필름이 대체로 네가티브다 보니...들여다 보면서 무슨사진인지 알아내는게 난관이다..-_-

포지티브..

추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네가티브

이쯤 되면 뭐가 뭔지 알아보는게 일이다.


필름값이 비싸고(네가:1500 vs 포지:3000), 비싼 현상료와 드믄 현상소(네가 현상료 1000원, 포지 현상료 2000원, 그나마도 충무로에 가야만 현상할 수 있음)를 감수하고라도, 포지티브로 가야 하는건가..-.-
물론 네가라도 그때그때 스캔해서 썸네일처럼 만들어 이곳에 올리고 있긴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그땐 그랬지' 하는 즐거움은 또 다른 것이므로...

그나저나..사진첩이 생각보다 몇롤 안들어간다. 두어롤 정리하니 꽉 차버려서, 중지..;

결국 사람은 여유가 생기면 또 빈둥빈둥 굴러다니고 만다..-_- 역시 사람은 달려야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