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5일 일요일

미스트 (The Mist,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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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소개하기 전에 일단 포스터에 대한 잔소리부터..

내가 영화를 보는 눈이 빼어나다거나, 감각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우를 쭉 지켜볼때, 사람들이 혹평을 내어놓는 영화의 상당수는 포스터와 실제 영화간의 괴리가 상당했던 경우이다.

소위 포스터가 관객을 '낚는' 경우인데...

 '스펙터클 초거대작', '상상조차 하지 마라', '충격적인', '최강의 다이나믹', '전미 박스 오피스', 거장 '누구누구' 등의 과대포장식 문구로 영화의 본질을 호도해버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자면,

<매트릭스>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어 낸  또 다른 가상현실 - <브이 포 벤데타>
영화 역사를 흥분시킬 스펙터클 초거대작 - <우주전쟁>
<글라디에이터>감독이 창조한 새로운 신화 올랜도 볼룸 주연의 -
<킹덤 오브 헤븐>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되고, 그의 인생은 역사가 되었다 -
<알렉산더>

 <미스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데, 일단,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먼데다가, 포스터의 분위기도 영화와는 완전 반대.

 어떻게든 관객을 모아(낚아)보려는 시도는 가상하긴 하지만, 좀 더 솔직하게 영화의 분위기를 전달해준다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배신감은 한결 덜해질텐데 말이다.

 이야기가 영화가 '별로'라는 것처럼 흐르는데, 단연코 근래 본 영화중 '수작'이다.
다만 포스터 덕분에 '낚인' 사람들이 많았을 거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고...
(네이버 리뷰를 보면 낚인 사람들의 울분을 절절히 느낄 수 있음...)

자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나무가 뿌리째 뽑혀 스러질 정도의 유난한 폭풍이 지나간 한적한 마을. 다들 복구에 한창이고,
슈퍼마켓은 각종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때, 한치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안개가 마을을 급습하고, 안개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사람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안개를 해치고 나갈 것인지, 슈퍼마켓에서 기다릴 것인지, 사람들은 분열하고,
이어지는 괴생물체의 습격에 '카모디'가 설파하는 종말론적 이야기는 점차 사람들을 장악하고,
상황은 점점 극단적인 행동(희생-제물)으로 치닫는다.

 안개속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집어 삼켜질 때, 개인적으로는 안개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말았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으나, 여느 헐리웃 호러물답게, '차원을 넘어 온 이질적인 생물체들'을 친절히 보여준다.
(덕분에 포스터의 '블록버스터'에 낚인 관객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되고,
 이후 영화는 철저히 '심리극'으로서 관객의 희망을 외면해버린다.)


 영화는 보는 내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데...
그 까닭은 영화속의 인물들이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을 지닌 영웅적인 인물이 아닌,
극한 상황에서 무기력하고, 동요하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 당신은 이 상황에서 누구를 따르겠는가?"
 "저 사람을 구해야 하는가?"
 "슈퍼마켓을 나가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영화는  다소 상식적이고, 다소 침착한 주인공과,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카모디'부인-그리고 집단의 광기-을
선택지의 양 극단으로 제시하는데, 언뜻 상식적인 선에서는 주인공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겠지만,

'혹시...? 주인공의 판단이 틀리다면?'
'결과론적으로 카모디 부인의 판단이 맞다면?'

극한 상황과 불확실한 정보들을 두고 어떤 판단을 내리라 한다면, 선뜻 대답이 쉽지가 않다.

영화는 다소 과장스럽게, 그리고 극단적으로 두 선택을 비교하며, 주인공의 판단이 합리적이며,
영웅과도 같다고 설교하려는 듯 보이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낚시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본다.
집단적 광기에서 탈출한 주인공 무리들이 도달한 곳은 결국 죽음이었다.
극한 상황,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판단은, 그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

 어느 미국 평론가는 '무서울 정도로 설교적인 영화'라고 혹평했다는데, 완전히 영화의 포인트에서
벗어난 평이다. 집단적 광기에 맞서는 영웅적 개인의 이야기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인생사 타이밍'이라는 한 네티즌의 영화평이 핵심에 근접해 있달까.

ps. 황금가지에서 나온 <스티븐 킹 단편 소설집>에 원작  <미스트>가 실려있다.
   서점에 앉아서 1시간 정도면 여유있게 볼 수 있는 분량인데, 영화는 상당히 원작에 충실한 것으로 보임.

2008년 5월 20일 화요일

스피드 레이서 (Speed Rac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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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로 한참 주가를 올리던 워쇼스키 형제. 그러나 <브이 포 벤데타>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더니..(물론 <브이 포 벤데타>의 경우는 각본/제작이긴 했다.) 이번 <스피드 레이서>로 하한가를 찍을 듯 하다...
(<아이언 맨>에 완전 밀렸다 한다...미국에서...)

사실 다음 작품이 '닌자 암살자'라는 왠지 흥행이 안 될 것 같은 제목인고로 이젠 내리막인가 싶기도 한데...
(닌자 암살자에도 비가 출연한다고 한다. 스피드레이서에서 눈도장 단단히 찍은듯!)


그러나, 사실 내게 있어선 정 반대인데....
매트릭스 1편을 보고 만세를 불렀다면, 쿵후놀이 하는 2편을 거쳐,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은 3편에서는 완전히 실망해버렸다.

때문에 <매트릭스>의 워쇼스키를 앞장 세운 <브이 포 벤데타>는 애초에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광고는 어찌나 허접스럽던지, <반 헬싱>류의 액션물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뒤늦게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못 본 것이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브이의 가면을 쓴 시민들이 바리케이트를 넘어 전진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전율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에 들고 나온 작품이 <스피드 레이서>란다. 기억에 가물한 <달려라 번개호>를 실사화했다는데....
거기다 비도 나온단다...얼핏 언론에 공개되는 화면을 보니 딱 12세관람가 수준.

아 나의 워쇼스키는 여기서 무너지는가... <브이 포 벤데타>는 그냥 뒷걸음질치다 잡은 쥐였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봤다는 사람들 이야기는 '볼만하다' vs '돈아깝다' 로 양극단을 달리니....

시작이 길었다. 왠지 본론은 시작보다도 짧을 것 같다..-_-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정신 연령을 12세로 낮춘 까닭이었을까..?(평소엔 정신연령 14세..-.-v)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등장인물을 제외한 대부분을 그래픽으로 처리하였는데, 무리하게 실사와 분간이 안될 정도의 영상을
추구하지 않고, 복고와 어색함을 적당히 섞어서 감각적으로 처리한 점이 돋보였고, 극장의 큰 화면에서
펼쳐지는 레이싱 장면도 나름 박진감 넘쳤다.  (복고적인 분위기는 마하 고고가 1970년대 만화라서,
만화를 많이 참고한듯도 하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가족들의 슬랩스틱 액션신도 재치 만점.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시는 정지훈 - 비는 조연급이라서..(그래도 가장 많이 등장한듯 하지만..)
딱히 두각을 드러낼만한 장면이 없어서, 뭐라 이야기 하기가 어려울듯 하다.

역시 예상대로 본론이 서론보다 짧아지는데...
이 영화의 개인적인 의미는...'워쇼스키 죽지 않았어!' 라는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화면과 구성력이라면 (비록 12세에 대상을 한정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작품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보는데.....<닌자 암살자>가 뭐냐...<닌자 암살자>가...ㅠ.ㅠ 다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ps.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 공장의 장면 곳곳에서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 떠올랐는데...
     찰리도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라 똑같은 '복고'의 모티브를 갖고 있어서일까..
     아래 두 장을 비슷한 느낌의 연장선상에 둔다면..조금 억지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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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나침반 (The Golden Compas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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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소(!) 니콜키드먼 출연으로 극장에서 볼까 망설이다가, 이제서야 보게 된 영화.
화려한 출연진과 상당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상당히 저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다니엘 크레이그는 날라리 007보다는 훨씬 어울리는 배역을 맡은듯 보이고, 반면 완소 니콜키드먼은
악녀의 이미지 때문일까, 원래 가진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듯 해서 아쉬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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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에 대해서 그닥 할 말은 없다. 환타지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이 없다면, 재밌게 보고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근래들어, (아마도 300부터 시작한 것 같지만) 동양인, 흑인 등, 비(非)백인이 원주민이나 악역으로 출연하면
동양인, 흑인에 대한 비하나, 백인에 대한 우월의식의 표출이라고 민감해 하는 반응들이 뚜렷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하며 영화를 볼 필요가 있나 싶다. (물론 의도적인 경우는 비판해야겠지만)

2008년 5월 19일 월요일

Landmark(가제)

최근 중형 카메라를 들고서 나름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있는데...
(작업의 동기가 카메라의 활용 방안이었다는 불순한 의도도 없잖아 있지만..)

휘황찬란한 랜드마크의 어둠에 덮인 모습을 담아보려고 하고 있다.

덕분에 주말 새벽 3-4시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주말도 피곤해 죽을 지경이긴 한데....

어제 박관택의 Light Drawings의 공간에 대한 작업을 보면서,

사람이 배제된 '장소'에 대한 작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박관택씨만큼 진지하게 작업에 대해서 고민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떤 사진이냐면...

박관택 - Light Drawings (20080515 - 20080601, 갤러리 라이트박스)

박관택
Light Drawings
20080515-20080601
갤러리 라이트박스 (http://www.light-box.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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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장소의 강렬한 이미지로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 작업들.
사진 찍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번씩 밤에 핸드폰 불빛이나, 불꽃 등으로 그림을 그려봤을 듯 하다.



이런 사진 말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런 사진의 스케일 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둠이 내린 장소에 찾아가서,
수십분여 조리개를 열어두고 라이타를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그려지는 대상과, 화면과 작가의 합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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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의 액션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리다'의 의미를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서 이 단의 '내러티브'가 강한 작업(One Happy Family)의 여운이 크게 남아서인지,
시각적인 강렬함을 제외하고는 이미지들이 '삶'에 침투하고 있다는 느낌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다.

장소가 거기 있었고, 내가 거기 있었고, 내가 그림을 그렸고,  그리고....?

불꽃을 들고 장소를 해메이는 작가의 강렬한 움직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와 그 움직임이 팽팽히 맞서 긴장한다기 보다는, 장소를 따라 스며들고 있는 느낌이다.
따라서 최초의 시각적인 강렬한 충격이 엷어지고 나면, 무언가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아쉬움이, 작가의 삶의 부재인지, 그 장소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부재인지,
혹은 보는 이의 삶의 부재인지는,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이 단 - One Happy Family (20080509-20080525, 예술공간 헛)

이 단
One Happy Family
20080509 - 20080525
예술공간 헛(http://www.hut368.com)


마치 한여름 장마철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지만, '문화생활'에 대한 강박과 집착으로
집에서 가까운(그리고 최근 들어 부쩍 전시공간이 늘어난) 홍대앞으로 향했다.
그 첫번째 목적지. 이 단의 One Happy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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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가족에 대한, 그리고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는데, 가족사진을 모티브로 한 것이
분명해보이는 그림들은 온통 붉은 색 배경과 검은 주인공들로 인해 다소 호러스러운 느낌마저 준다.
One Happy Family라는 제목과 역설적인 분위기의 그림들. One Horro Family, 혹은,
한때 행복했던 가족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한때 행복했던 가정을 영어로 간결하게 작문해보려다 실패..ㅠ.ㅠ)

하지만 이 역설로 인해 전달해주는 메세지는 더욱 분명해지는데,
가정이라는 것이 결코 우리 머릿속에 새겨진 이미지처럼 단란한거나 아름답거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
그보다는 아주 가끔, 아주 가끔 발생하는 갈등의 해소와 웃음을 제외하면,
집착과 구속과 권위와 강제와 억누름으로 실상 치열한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 집단 중 하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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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듯 볼에 입을 맞추는 아버지와, 수줍어하는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을 살펴보면,
이모티콘으로 그리자면 ( -┏ ) 정도에 해당하는, 당혹스러운 표정이고,
아버지의 표정은 또한 얼마나 간교한가.
제목 '배신은 불법'이 드러내듯, 수십년을 함께하는 부부관계의 상당부분은
집착과 강박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쉽게 부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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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욕망으로 나를 낳으시고 나는 집착으로 그를 착취하니 위대한 모성이여 영원하라"
원형 목판에 그려진 그림의 측면에 씌인 저 글을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모성에 대해, 그리고 자식에 대해 저 글을 어떻게 부정하려 해 보아도, 결국 사실이 그러한 것을.
글귀를 읽으려 원형 목판 주위를(그림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빙글빙글 따라 돌자니,
어머니와 자식의 소용돌이에 한걸음씩 한걸음씩, 그 잔인한 관계에 한걸음씩 한걸음씩 내딛는 느낌이었다.

가족, 어머니, 아버지. 모성, 부성. 누구에게나 존재하는(혹은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위대하다, 특별하다 이야기 한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인, 자애와 사랑의 따스한 이미지로-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누구에게나 특별한 긍정적인 것.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는가?


예전 할머니/아버지/삼촌의 사진을 올리면서도 언급했던 것이지만...
(http://nuguges.cafe24.com/tt/18  참조)

 TV 드라마, 소설, 영화 속에선 대체로 가족의 갈등과 긴장은 일말의 따스함과 웃음으로 매듭지어지지만,
가족, 현실 그대로의 가족이란, 혹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가족이란,
결코 그렇게 감상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08년 5월 15일 목요일

아이언 맨 (Iron ma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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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 상암 홈에버(엊그제 홈플러스한테 먹혔다.)에 필름 현상을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뭘할까 두리번거리다, 붙어있는 상암 CGV에서 '아이언 맨'이 시간이 딱 맡길래 간만에 극장서 영화감상.
사실 비가 나왔다는 스피드 레이서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어중간해서 포기해야 했다.
(상영관은 가장 많이 잡긴 했더라....)

 아이언맨 예고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고로, 그닥 기대는 하지 않고 봤는데, 기대가 작았던 역효과랄까,
둘째줄에 앉아 내내 고개를 젖히고 보느라, 목이 뻣뻣해진 보람은 있을 정도로 기대 이상이었다.

~맨 시리즈가 다 그렇듯, 주인공이 적들을 일망타진하고, 사랑도 이룬다는, 그리고 다음편도 예고한다는 이야기.

여타 ~맨 시리즈랑 조금 차별화 된 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상당히 뻔뻔하다는 것.
뻔뻔한 주인공 성격마냥, 어설픈 갈등, 고뇌따위 보여주지 않고, 스트레이트 하게 보여준 덕분에 별다른
생각없이 눈과 귀로 화려한 영상을 즐기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다.

 혹자는 결국 자기가 뿌린 악의 씨앗을 수습한다는 결자해지나, 그 결자해지에 대해 과연 주인공이 정당한가를
물을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철저히 그런 도덕적 판단에는 무관심하고,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미덕인 듯 하다.
이 영화에서 관객이 원하는건, 어린시절(혹은 지금도) 종이 위 그림에서만 보던 멋진 주인공이 내 눈앞의
실제세계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요곤 특히 미국에서겠지..), 혹은 멋진 메카닉이 보여주는
화끈한 액션일테니까 말이다. 영화의 메세지인즉 '군소리말고 보기나 하셔!'

  한편 극장을 나서며 문득 드는 생각은 영상의 힘-실사-은 참 대단하다는 것.
아이언맨이니, 엑스맨이니, 판타스틱 포니, 아마 영화화(실사 영상화)되지 않았더라면, 평생 알지도 못했을
만화 캐릭터들을 하나 둘씩 머릿 속에 심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지나가다 (서점이나, 문구점) 쇼윈도에
진열된 이 캐릭터들을 보게 된다면, 아 저게 영화속의 캐릭터였구나 라고 반가워할테지.
미국문화의 세계정복 따위의 다소 진부한 이야기까지 나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좋건 싫건, 앞으로도 생소한(그리고 곧 익숙해질) 만화 캐릭터들은 계속 쏟아져나올듯 하다.

오늘도 이어지는 잡담..

2008년 5월 14일 수요일

[20080502] 만 하루 남도여행 #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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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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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간만에 집에서 영화를 봤다..근데 그 영화라는게 10000 BC....
 간만에 보는 것 SF물을 보고 싶었지만, 딱히 끌리는 SF가 없어, SFX물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제목에서 풍기는 서기 10000년 전의 뉘앙스는, 멜깁슨의 아포칼립토와 같은 리얼리티(피철철?)의 선사물을
기대케 했으나, 시작부터 멀쩡하게 생긴 등장인물들이 영어를 지껄이는,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판타지물이었다.

배우나, 화면부터 남루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더니.. 화면을 둥둥 떠다니는 맘모스떼의 모습에선 아뿔사 싶은 정도.

내용인 즉슨 핍박받던 종족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여 이집트(?) 파라오를 무찌른다는 내용인데,
기원전 10000년에 이집트라는 발상도 다소 넌센스고(앞서 판타지 장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더라도!)
영상이면 영상, 음악이면 음악, 부족한 부분이 자꾸만 크게 다가온다.

사실 스토리라인의 단순함과 다소 과장된 설정을 생각하면, 요전번에 개봉한 <300>과 비슷한 수준이겠건만,
(파라오/페르시아왕 에게 창을 겨누는 라스트 신도 똑같다)
300의 압도적인 영상,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적 사실에 동떨어진 설정- 진중권식으로 말하면 '서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덕분에 비디오대여점용 영화로 전락해버린게 아닌가 싶다.

<10000 BC>의 라스트 신.<300>의 라스트 신.


그러고 보면 '역사적' 혹은 '문화적'이라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300>을 보고 있노라면,
<스파르타> 라는 것이 영화가 설명하지 않는 부분, 혹은 부족한 부분을 얼마나 채워주고 있는지.


잡담 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