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9일 화요일

장보윤 -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

 

장보윤 개인전 - <기억의 서 : K의 슬라이드>

20090924-20091011

브레인 팩토리

 

 

 지난 개인전 <Un-Vanished Memory>展에서 사람이 떠난 빈집에 놓여진 사물들을 스케치 하며,

그 공간을 소유했던 사람과, 물건들의 역사, 그리고 작가의 기억과, 관객의 기억의 모호한 중첩을

시도했던 것 처럼, 이번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展에서는 집 주변 공사현장에서 발견한

 400여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단서로, 역시 그것의 주인과, 작가와, 관객의 기억들을 짜집어 나간다.

 

  전시된 K씨의 흔적-편지, 엽서, 일기, 등을 살펴보며, K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 그 당시는

저랬을 법도 하겠구나,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왔을까, 저 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갔었을까, 이 사진에서

K씨는 누구였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며 K씨의 흔적에 젖어들다가, 문득 전시 소개글을 읽어보니

슬라이드를 제외한 모든 것은 작가에 의해 가공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슬라이드의 이미지들마저,

작가에 의해 모호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에, 잠시 '헛' 하는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법원이나, 신문사가 아니라 갤러리라는 사실, 즉 내가 해야 할 게임은 '탐정 놀이'가 아니라

'기억 만들기'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면서, 작가의 간극 매꾸기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기로 한다.

40여년전 K씨의 기억과 오늘의 나 사이의 간극이, 작가의 상상력과 기억으로 해서, 과연 어떠한 형태로

매꾸어질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듯 싶다.

2009년 9월 28일 월요일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 국제사진이론 학술대회

 지난 토요일 아트 선재에서, 계원조형예술대학교의 주최로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 놓고, 프랑스 제8대학에서 오신 석학들과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진행되었지만, 나는 결혼식이 오전에 있는 바람에,
2시경부터 들어가 주형일 교수의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발제글부터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이렇다 저렇다 평할 짬은 안되지만, 간략히 소개/느낌을 적어보자면,

 주형일, <디지털 시대의 사진: 대중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
 - 대중에 속한 사람으로서, 사실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였는데, 다소 논의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듯 했다.
 인터넷의 블로그를 사용하는 행위는 자본이 좋아하는 아주 착한 자발적인 무보수 노동자에 비해진다는 것,
 공동체(즉, 세력)를 형성해서 인터넷을 소유한 자본들에 대항할 수 있다는 의견 제시나,
 이미지의 무한 복제를 통한 저작권의 무력화, DDOS를 연상시키는 사이트 공격 등의 극단적인 대안은
 어쩔 수 없이 자본과 공생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요구하기는 (발제자도 인정했다시피)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 시간의 이영준 교수 말마따나, 자본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보다는
 자본에 이용당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쥘리앙 세레쥬, <자본주의의 사진적 재현에 관하여: 도시와 일상>
 - 자본주의를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논의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결과적으로 '일상성'으로 초점이 모여지는 듯 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계속 변화해 나가며,
 복잡한 양상들이 얽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시의 외부에서,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굉장히 지엽적이라고 보이는 일상적인 것들이 바로 도시의 모든 것 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혹은 반대로 말하면 도처에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말미에 Eric Sadin의 문화분석적인 사진을 모범예(?)로 제시했다.
 한데, 저기서 도시나, 자본주의를 빼고 '삶'을 넣어도 말이 그대로 될 것 같다. 결국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삶, 도시의 삶이기 때문일까?
 (참고로 본문과 상관은 없지만 쥘리앙 세레쥬의 아내는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서동진, <생명의 이미지, 자본의 이미지>
 -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CT, MRI의 의학영상에서 부터, 첨단의 의학영상분야까지 소개를 하면서,
 인체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그리고 그것들이 점차 병의 진단을 넘어서서 병의 확률을 이야기 하며
 의료행위와 그 영상들을 자본종속적으로 변화시켜 간다는 이야기. 달변과 신선한 주제로 흥미로웠다.

 박상우, <사진 복제를 통한 개인의 식별>
 - 용의자 검거에 사진이 도입되기까지의 역사적인 설명과, 그 사진들의 복제되기까지의 과정들.
후반부는 주로 프랑스 경시청의 베르티용(최초로 사진을 용의자 수사에 도입했음)의 노력에 촛점이 맞춰졌다.
 발표하느라 진땀은 빼셨는데, 다소 발표 스킬이 부족하셨던듯..^^;





 

ps.1 발제글들이 수록된 자료집을 사고 싶었지만, 품절인 관계로, 연락처만 적어놓고 왔다.
내가 듣지 못한 앞서 발제글중, 프랑스와 슐라쥬의 <사진, 미디어, 자본주의적 관계의 관계들>은
번역도, 통역도 난해했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 같다.

ps.2 장내에 들어서면서 놀랐던 것은, 대략 2/3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청중. 연령대도 다양한듯 했다.
이렇게 많은 여성 예술(or 미학)인구에 비해..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이 많으니..음...
뒤에 앉아 있던 두 여자분은 통역기를 귀에 붙였다 땠다 하며, "통역이 너무한데? 이렇게 빼먹어도 되나?"
를 연발하고 있었는데..그저 부러울 뿐.

2009년 9월 12일 토요일

상도4동 산65번지 (상도11지구)

상도 4동 산65번지. 두어달 전쯤 65억원대 재개발 로비가 드러나면서 시끄럽기도 했고,
대지주/건물주가 따로따로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에 이슈가 되는 곳이란다.

이곳의 상황을 아는대로 요약해보자면, 대지는 지덕사-양녕대군종친회 소유이고,
재개발을 노리고 들어온 투기성 무허가 건물주들이 조합을 만들어 2007년 동작구청으로부터
재개발 인가를 받아냈다. 한편 지덕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건물주와 세입자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는
재개발이 아니라, 자기 소유의 땅에 건물을 새로 짓는 '민간'재개발을 추진을 하기 위해서,
재개발 인가 취소 소송과 동시에 철거용역을 동원해 건물 철거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건물을 헐고 나대지로 만들어 버리면 '민간'재개발은 누워서 떡먹기가 되므로)


641번을 타고 대림아파트 앞에서 내려 시장을 거쳐 30여분을 걸어 올라갔다.
오르는 길가에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나치며 엿들어보니,
대체로 재개발, 보상, 철거,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듯 했다.

길을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담장이 있는 번듯한 3층 4층 집들이 사라지고,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낮은 집들이 산등성이에 따닥따닥 몰려있다.
지적도에 표시나 될까 싶은, 이게 길이 맞을까 싶은 조악한 계단과 흙길이 그 사이로 얽혀있다.

군데군데 무너진 집들과, 흘러내리는 골재를 막기 위한 검은 그물들. 그리고 과격한 구호들.
지난 2월부터 지리하게 기습적으로 건물을 헐고, 몰아내기를 반복한 탓인지,
철거된 골재위의 검은 그물 사이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좀 더 올라서 내려다보니, 풍경이 참 처참하다. 검은 그물과 드러난 붉은 흙들 사이로 보이는
아직도 남아있는 집들. 지난 여름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의 녹음이 무심하게만 느껴진다.





이미 사람이 떠나간 어느 집. 덩그러니 놓여진 아이들 장난감이 안스러운 가운데,
문 앞 마당에 던져놓은 검은 그물은, 이곳도 곧 헐어지고 말거라는 예고장처럼 느껴진다.



 살던 이들은 떠나가고, 살던 건물들도 허물어졌지만, 남아있는 이들은 어떻게든 지내고,
또 버텨내야 할 터. 무너져내린 건물을 따라, 심어놓은 화분과, 일궈놓은 텃밭, 검은 그물사이로
솟아나와 헝클어진 호박넝쿨들이 여기 사는 이들의 희망을, 의지를, 소망을...
그리고 그렇게 감내해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을 드러낸다.

2009년 9월 6일 일요일

화이트 박스@세상의 숨결

지난 8월 30일 막을 내린 상상마당에서 진행한 SLAP-세상의 숨결 전시 中.....






 전시장 구석, 내 사진이 걸린 모퉁이에 등장한 흰색 상자.

상자 앞에서 고개를 갸웃 거리는 관객들도 있엇지만..

대체로 무심하게 놓여진듯한 상자.

상자 안에는 물론 담배로 만들어 태운 상상마당 건물 모형이 들어있다.
(관련 이야기 - Welcome to 상상마당 )

지난 석 달 동안의 결실들을 지켜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어보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올해의 작가 2009-서용선 / 아리랑 꽃씨 -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9 서용선
20090703-20090920

아리랑 꽃씨
20090717-20090927

국립현대미술관



 간만의 국립현대 미술관 나들이.

 올해의 작가 <서용선>展과   일본/러시아/중국 거주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아리랑 꽃씨>展을 보았다.
서용선 작가는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이어서 단종의 폐위를 다룬 역사화와
도시인들의 군상을 다룬 작업들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위의 도록에서도 느껴지듯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선이 인상적이다.  2미터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과감하게 쓰여진 색채와 검은 선들, 그리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은 막 분출될 것만 같은 억눌린 꿈틀거림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작가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못했다라는 부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계유정란(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킨 사건)을 다룬 역사화와 당시 19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은 그의 그림이
단순히 역사화를 넘어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암시한다. 자화상에 나타난 굳은 표정과 붉고 날카로운
눈매는 이 땅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사명감, 그리고 실천적, 현실참여적 작가로서 민중미술
계보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될 수 있으리라 본다. (서용선 작가는 근래 철암의 폐광지역에서
철암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매월 세째주 토요일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도슨트의 설명을 비롯 리플렛의 내용 등 전시 전반에 걸쳐서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인
시대의 현실보다는 보편적이거나 추상적인 현실 차원에서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엿보였다.
(이를테면 부조리한 실존, 실존적 고통,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등등..)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변하고 있고, 또한 너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보편적인 부분에서의
공감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이와 같은 작업에서 구체적인 시대 현실을 제거한다는 것은
작업의 의의를 반감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절이 수상하여 그런가? 하는 괜한 생각조차 든다. 말많았던 MB코드 인사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관장덕에 말이다.)


<아리랑 꽃씨>展은 일본/중국/러시아에 거주중인 1/2/3세대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전시 자체보다는 전시 중에 벌어진 사건이 흥미로워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 1세대 한인 작가 한락연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작품 철거를 알리는 패널만이 존재할 뿐,
벽에 남은 못자국만이 작품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장처의 특별한 사정으로 작품을 공개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라는데,
특별한 사정인 즉슨, 지난 7월 5일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유혈사태로 바짝 긴장한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이 모일만한 장소는 사전 차단하라" 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혹시나 1세대 한인
작가의 작품앞에 모여들 한민족들을 걱정하여 작품을 철수시켰다는 것이다. '혹시나'겠지만,
예술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주시하고 있는 중국정부의 반응도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그리고 달력

 

잡설: 미적 행위의 사회적 결과는 무엇인가?(열기)


 

 

2009년 8월 6일 목요일

[20090803-20090805] 고흥반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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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내 구름/비/구름을 점치던 불안한 일기예보대로, 잔뜩 흐린 하늘을 마주하며, 전라남도 고흥군 녹동항으로 차를 달렸다. 서울에서 녹동항까지는 약 5시간 남짓, 11시에 녹동항에서 출발한다는 금당8경 유람선을 타기 위해 다소 서둘러 새벽에 출발한 덕에,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녹동항에 도착했다. 짜릿한 바닷내음과 말린 생선냄새가 코를 찌르는 조용한 항구. 바로 앞의 소록도와는 지난 3월 연육도가 개통되어 차들이 오가고 있었고, 부두에는 거금도를 오가는 페리가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소록도를 지나 거금도까지 이어지는 다리 공사가 한참이란다.




 최근 고흥군에서 밀고 있는 <금당8경>은 금당도를 한바퀴 돌며 해안가의 기암괴석(?)을 구경하는 것인데, 거리상 녹동항이 가깝운 항구이지만, 행정구역상 금당도는 완도군에 속해있다는 비화(?)가 있다고 한다. 출발전 인터넷의 사진들을 통해 어느정도 짐작한대로, 대단히 수려한 장관이라기 보다는 소박한(?) 시골섬의 풍경이 어울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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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시간 남짓 섬을 돌고 녹동항에 도착하니 슬슬 배가 고프다. 이곳의 명물이라는 참장어 샤브샤브를 먹어보기로 했다. 참장어를 동네에 따라 <하모>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참장어 샤브샤브> 혹은 <하모 유비키>라고 불린다고 한다. 참장어 회는 살짝 아나고나 전어 같으면서도 담백한 편이고, 샤브샤브는 뻑뻑할 것 같다는 예상과 다르게 살점이 부드럽게 넘어갔으나, 솔직히 장어와도 회와도 많이 친하지 않은 까닭에, 대단히 맛있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특산물을 맛보았다는데 만족.






 여기까지 온 김에 소록도를 한번 둘러볼까 하였으나, 혹시나 민박집에 전화해보니 뭔가 이상하게 예약을 해놓은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기에, 일단 숙소 확인을 위해 <나로도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나로도는 최근 위성추진체발사 기지로 이슈가 되고 있는 곳. 고흥반도에서 다리를 건너 <내나로도>로, 그리고  다시 다리를 건너 <외나로도>로 이어진다. 역시나 예약이 중복으로 되어있는 턱에, 살던 방을 내어주시는데, 마침 옆집에 방이 있다 해서 <고흥민박>에서 묶기로 했다. 가족단위 피서객이 대부분인 나름 조용한 시골 해수욕장. 흐린날씨가 아쉽긴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바다에 몸을 담그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신나게 바다에 몸을 던졌다. 해수욕장 경사가 꽤나 완만한 탓에, 해안에서 상당히 나아가도 허리까지 물이 찰랑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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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알람을 착각해서 새벽 5시 20분부터 바지란하게 움직인 덕에 8시경 해안드라이브코스로 제격이라는 남열해수욕장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비온다던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화창한 날씨. 듣던대로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들이 연신 탄성을 자아낸다. 상쾌한 아침 햇살과 바람, 그리고 파란 바다와 멀리 가까이 보이는 조그마한 섬들이,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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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도착한 남열 해수욕장은, 둘러보고만 가기는 너무 아쉬울 정도였는데, 연신 어제가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바다에 빠졌어야 했다고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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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나와 순천만을 향했다. 뜨거운 햇살 탓에, 방금전 본 해안도로의 절경 탓에, 순천만 갈대밭은 다소 감흥이 덜한 상태로 둘러보고, 송광사로. 여느 절들처럼 입구를 따라 흐르는 계곡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데,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자니 방금전까지의 더위가 씻은듯 사라진다.

 

 




송광사의 뛰어난 점이라면 계곡과 더불어 절 자체의 규모도 상당하고, 외관 또한  빠지지 않는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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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숙소는 송광사에서 40분정도 거리에 있는 백아산 자연휴양림. 휴양림을 처음 가보는지라 시설면에서 열악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약한 곳이 콘도식으로 된 3층 건물이라서인지, 깨끗한 실내에, 복층 구조, 에어컨, 냉장고까지 가격(\50,000)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수육(동파육) 거리를 샀는데, 너무 살코기로만 사오는 바람에 다소 팍팍한 수육이 되어버렸다. 나름 필살기로 준비한 요리인데,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는 담양을 들러 소쇄원과 메타세콰이어길(관방제림)을 들렀다. 작년 초에 들렀던 곳이라 다소 감흥은 덜했는데,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죽녹원으로 이어지는 관방제림은 나무 그늘 밑으로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거닐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남대문>식당에서 떡갈비를 먹고 슬금슬금 서울로 돌아오니 자정을 넘긴 시각. 2009년 여름 고흥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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