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4일 일요일

Art History


John Baldessari <Igres and Other Parables> 시리즈 中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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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예술가가 예술학교를 막 졸업했다. 그는 교수에게 다음에 할 일을 물어보았다. "뉴욕으로 가게" 교수가 대답했다. "모든 갤러리에 작품 슬라이드를 들고 다니면서 전시해 줄것인지 물어보게." 예술가는 그렇게 했다.

 

 그는 슬라이드를 들고 갤러리들을 돌아다녔다. 각 디렉터들은 한장씩 슬라이드를 집어 들었다. 좀 더 잘 보기 위해 빛쪽으로 들어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너무 촌스럽네요." 그들 모두 이야기 했다. "당신은 주류에 들지 못해요.", "우리는 예술사적인 것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그는 노력했다. 뉴욕으로 옮기고, 끊임없이 그리고, 거의 잠도 자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박물관, 미술관 오프닝, 스튜디오 파티, 예술가들의 주점 등에 참가했다. 예술에 관련된 모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예술에 대해 꾸준히 읽고, 여행을 했다. 그는 쓰러졌다.

 

 그는  두번째로 슬라이드를 들고 갤러리들을 찾았다. "아" 이번에 갤러리 디렉터는 이야기했다. "당신은 마침내 미술사적(Historical)으로 되었군요."

 

 교훈: Historical은 Hysterical로 잘못 발음된다.

 

 주1) 존 발데사리의 1967-71년 작업 <Ingres and Other Parables(앵그르와 다른 우화들)>은, 텍스트와 사진 이미지가 결합된 작업으로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미술세계에 얽힌 우화같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주2) 최근, 사진을 미술사적(Historical)으로 탐구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고 있다. 한데 내가 받아들이기에 내러티브보다 형식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경향이 뚜렷해 보여서, 여러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지고 있다. 시도 한다면, 분명 눈에 띌만한 성장이 기대가 되긴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진에 깊게 발을 들이거나, 혹은 내가 추구했던 것으로(그 추구했던 것이 무언가 이룩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게 우스울 수도 있지만) 돌아올 타이밍을 잃어버릴까 걱정도 된다. 뭐 될대로 되라지.

2010년 1월 4일 월요일

사진 이미지의 안과 밖

 

약 한달 전쯤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책. "눈빛"출판사 책이라면 일단 득템했다고 생각하고 모으는 중.

 

첫장을 넘겨 보이는 저자의 프로필이 심상치가 않다. 1955년출생에, 서울대 미대를 졸업해서,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부(사진영상), 파리1대학 미학대학원(사진미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지금쯤 한자리 하고 있을 법도 한 경력인데, 최근에야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이긴 하지만, 도통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고 해서, 찾아봤다.

 

 <유럽의 괴짜박물관(2009)>,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2008)>,

 <사진 속의 세상살이(2007)>

<앨범사진 1920-70(2007)>,

<이라크 견문록(2006)>,

<사랑의 이미지(2005)>,

......

 

학술활동보다는 세계 이곳 저곳으로 다니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책의 제목으로 봐서 전문적이기 보다는 대중적인 부분에 역점을 두는 듯 하다. 본 책 <사진 이미지의 안과 밖> 역시 전반적으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진 느낌이 강하다.

 

서문에 적혀 있듯, <사진 이미지의 안과 밖>은 크게 4개의 파트로 구분되는데,

 

1부 - 사진이미지의 특성

2부 -  작가론

3부 - 대중적 이미지의 신화적 성격

4부 - 사진의 역사에 관련한 글

 

1부에서는 기념 사진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고찰, 사진을 둘러싼 여백의 의미, 그리고 사진에 담기는 도시적(아마도 현대 사진의 한 경향인 일상성의 맥락에서) 풍경에 대한 이야기 등을 풀고 있다.

 

2부에서는 성두경, 김기찬, 배병우, 전미숙, 앗제, 로베르 두아노, 신디셔먼, 매이플소프, 등의 작가론을 담고 있다.

 

3부에서는 비디오 촬영과, 텔레비젼 등의 동영상이 사진과 비교되는 대중적 속성을 살피고, 세간의 화제였던 플레이보이 모델 노랑나비 이승희를 화두로 누드 사진-예술의 대중적 신화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미술시장의 논리와 사진의 속성인 복제가 빚는 아이러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4부에서는 조선총독부의 금강산 사진 및,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사진예술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글은 전반적으로 편하게 읽혔고, (물론, 편한 와중에서도, 나의 앎이 부족하기에 놓치는 부분이 꽤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편한 반면, 다소 루즈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김기찬의 작가론에서 "물건의 세계에 위계질서가 있다면 아마 가장 밑바닥을 차지할 것들...(중략)...문득 인간의 세계에 쳐들어와 제자리를 찾겠다고 시위중인 것 같기도 하다."와 같이 감상적, 혹은 수필적인 문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읽는 입장에서는 글의 성격이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저자가 서두에 밝히고 있듯, 작가론은 "의뢰받은 글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글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책에 씌여진 1999년 당시의 사진의 문화와 기술(tech)적인 부분들이, 약 10년여가 지난 오늘날에 와서는 상당부분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사진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초상화가 서서히 세를 확장하고 있다고 언급되고 있지만, 현재 초상화는 딱히 세를 갖추지 못한 것 같고, 당시 센세이션이었던 노랑나비 이승희의 누드 화보는 너도나도 벗어대는 연예인 누드 화보 덕분에 더 이상 놀라운 것이 되지 못한다. 또한 본문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기념 사진이 갖는 "시간의 죽음"에의 엄숙함은 오늘날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으며, 주사선과 도트로 구성된 제한된 해상도의 비디오, 텔레비전 영상, 그리고 그에 비교되는 은염결정체인 사진은 초고해상도의 HDTV와 디지털 카메라의 보편화로 인해 더이상 구분이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문득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세기말에 쓰는 사진론". 세기가 바뀌고 10년이 지난 오늘의 변명일까.

 

2010년 1월 2일 토요일

2호선 크리스마스 Project 2009

작년 <2호선 크리스마스 Project 2008>에 이어 올해도 2호선을 돌아다니며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사진에 담았다. 작년에 적어둔 글을 살펴보면

 

" (전략)일간 400만명(지하철1-4호선 기준)을 향해 다양항 욕망이 투사되는 공간 서울 지하철.
 그 가운데서 묘한 동질감과 어색함으로 스스로의 공간을 주장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것을 향한 이종혼합된 욕망을 드러내고, 공간에 투사되는 다양한 욕망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한다."

 

따위로 글을 적어놨는데 돌이켜보면 다소 과대포장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개별적인 현실들을 모아 억지스레 엮어, 무언가를 끌어내어 단정지으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근래 생각하고 있는 바....

 

솔직히 말하면 2009년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까닭은 "작년에 했으니까" 다.

덕분에 올해는 작년처럼 산만하지 않게, 크리스마스 트리에 집중할 수 있었던 듯 하고,

시각적인 면에서는 작년처럼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는 것을 자제한 까닭에

다소 정리되어 보이는 느낌도 있다.

 

43개의 트리를 죽 모아놓고 보니 작년에 지껄인

 

"묘한 동질감과 어색함으로 스스로의 공간을 주장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

 

가 그럴싸 하게 다가오긴 하는데, 올해는 한걸음 물러서서

그냥 "지하철 역사에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로 음미해보고자 한다.

(ps. 작년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201 시청

 

 

205 동대문역사문화공원

 

 

213 구의

 

217 신천

 

 

 

220 선릉

 

 

 

 

227 낙성대

 

 

 

229 봉천

 

 

240 신촌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송년회

 

 휘청이는 밤. 소주 한 잔조차도 괴로운 이들은 언제나 어색한 구경꾼이 되곤 한다.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좀비랜드 & 도그 하우스 & 2012 & 시간여행자의 아내 & 팬도럼

이것저것 모아놓고 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 포스팅이 밀리고 있다.

이발을 해야지 결심한지가 3주가 넘었지만, 연말이라 이래저래 정신없이 지나다보니,

여전히 머리는 덥수룩 하다.

 

쌓여있는 포스팅을 영원히 묻어두기는 아깝고, 밀어내는 차원에서 그간 본 영화들에 대한 촌평 몇마디.

 

우선  경쾌한 좀비 영화 두편. 두 편 모두 좀비가 무섭다기 보다는 불쌍할 정도로 무능력하게 묘사되고 있다.

하기사, 그래서 조지로메로는 <랜드 오브 더 데드>에서 좀비에 빗대어 디트로이트의 노동자들을 묘사했던가.

하나, 아래 소개할 두 영화 모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며 볼 영화는 아니다.

 

<좀비랜드> - 우디 해럴슨의 능청스런 카우보이 연기가 포인트. 빌 머레이도 카메오 출연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이경규쯤 되려나, 미국 사람들은 많이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경쾌한 전개와 위트, 그리고 일탈의 대리만족으로 보는 이를 편하게 만드는 영화. 살짝 상처입은 네 영혼들의 경쾌한 좀비나라 생존기.

 

<도그하우스> - 여자만 좀비가 되는 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 뛰어든 7명의 장년남. 내심 여성들의 통쾌한 복수가 이어질까 기대했었지만, 왠걸 영화는 남자들이 얼마나 어린애들 같은지 보여주느라 정신이 없을 뿐. 여자 좀비들을 상대로 보이스카웃 놀이에 정신이 팔린 철없는 남자들. 그래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철이 안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재난영화의 대부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를 감상.
흑인 대통령과, 인류의 마지막 피난처가 아프리카 희망곶이라는 데서,
아프리칸 흑인 파워의 성장이 우선 느껴지고..(일단 등장하는 흑인은 모두 착하다!)
중국의 성장과 티벳은 중국이라는 암시도 은연중 하는 것 같다.
한국은 등장도 안하고....
물론 제작사가 컬럼비아 픽쳐스(소니)인 탓도....
2시간 40분은 다소 지루했다.

중간에 잠시 등장하는 우디해럴슨은 역시나 반갑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결혼 때가 다가와서일까...심하게 공감되는....

약속시간을 때우려고 보던 중이라 끝에 20분 가량을 보지 못했는데,

심히 궁금하다.

<팬도럼>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지구인들의 대규모 집단 이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 생각난다.

믿었던 선장(?)이 악마라는 컨셉은 <이벤트 호라이즌>의 샘 닐을 연상시키는데,

아무래도 본격 호러물이 아닌 이상 샘 닐의 카리스마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충분히 흥미 있었고, 괜찮았던 구성의 영화.

SF소설 <매로우>(하드  SF르네상스1 수록)도 떠오른다.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조지 R. R마틴의 <나이트플라이어>에서 주인공들이 찾는 항성간 이동 생명체 "볼크린"이

새 지구를 찾아 우주를 수천년 여행하는 <파피용>이었다..라는...

<나이트플라이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는 대로 다시 포스팅할 예정.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써로게이트 (Surrogates, 2009)

 

 <디스트릭트9> 이라는 신선한(?) 작품 덕에, 브루스윌리스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관심밖으로 밀려난 <써로게이트>. 금요일 저녁 6시 30분 타임, 영통 메가박스에서 가장 큰 M관 상영중이었지만, 나를 포함 딱 2명이서 영화를 관람했다. 이렇게 극장을 전세 냈던 적은 5년전 <에일리언 2020, Pitch Black (빈 디젤이 본격적으로 액션 배우로 나선 영화)>을 조조로 4명이서 관람했던 이후로 가장 적은 숫자.

 

 

 영화는 인간에 의해 조종되긴 하지만, 인간을 대체할만큼 인간과 유사한 생김새를 가진 로봇, "써로게이트"-영어로는 대리, 대행자, 라는  뜻이다-가 실용화된 근 미래를 그리고 있다. 사람이 집에 누워서 기계를 뒤집어 쓰고 생각만 하면, 로봇이 실제 사람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사람처럼 아프지도 않고, 외관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혹은 원한다면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적인 능력도 가능하니, 너도 나도 "써로게이트"로 자신을 대신할 "대리인"을 원할 것은 자명한 사실. 이로 해서 전 세계의 99%의 사람들이 "써로게이트"를 이용하고, 덕분에 범죄도, 차별도, 사고도 사라진 유토피아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방구석에서 기계를 뒤집어 쓰고 로봇 조종이나 하는 인간미 없는 세상을 유토피아라 할 수 있을까?"

 

 나를 대신하는 "가상의 나"에 대한 이야기는 <다크시티>, <엑시스턴즈>, <13층>, <너바나>...그리고 결정적으로 <매트릭스>까지 여러 영화에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소재면에서는 다소 진부한 것도 사실이지만, "써로게이트"들의 매끈한 고무피부, 약간 어색한 움직임, 써로게이트 충전소, 써로게이트들 사이를 맨몸으로 지날때의 현기증의 표현 등등 영화의 디테일은 진부한 소재를 넘어 눈을 즐겁게 해주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의 줄거리나, 주인공들의 행동보다도, 영화의 설정들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는데, 큰 줄기는 "내가 원하는 나를 이루어줄 수 있는 <가상의 나>가 생긴다면, 정말 범죄도, 차별도 사라지는 멋진 사회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에서는 써로게이트들의 모니터링과 통제 등에 따른 인권침해를 보여주긴 하지만, 써로게이트 자체는 살과 살이 닿는 인간적인 측면-영화에서는 구체적으로 부부관계-의 약점을 제외하면 무척 긍정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영화에서와는 다른 "디스토피아"가 떠오르는데, 두어가지만 짚어보려한다.

 

1. 빈부의 격차, 그리고 차별은 써로게이트로 해서 심해질 것이다.

 써로게이트는 상품이다.(영화에서는 VSI라는 회사의 제품이다.) 즉, 부유한 사람은 비싸고 좋은 모델을 살터이고, 가난한 이들을 어쩌면 구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가격의 제품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구입하더라도, 비싸고 좋은 모델과 확실히 구별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리고 비싸고 좋은 능력의 써로게이트로 해서 처리하는 일의 양이나,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수준이 달라진다면, 저급 모델을 사용하는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점점 가난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사람을 판단하는 모든 척도는 "얼마나 좋은 써로게이트"를 가졌느냐가 될 것이다.

 

2. 범죄는 증가할 것이다.

 모든이들이 써로게이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살인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재물손괴"에 해당하는 범죄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내리쳐도, 부서지는 것은 상대방의 로봇일 뿐, 몇푼 물어주고 말자며, 상대방의 써로게이트를 파괴하는 행위가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또한, 오늘날 익명의 공간-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공격성을 볼 때, 써로게이트 뒤에서도 역시 유사한 공격적인 성향이 증가할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한다.

 

3. 강력한 감시와 통제 체계가 구축될 것이다.

 영화에서도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써로게이트의 모든 영상과 기능을 중앙에서 관리할 수 있다면, 그 감시와 통제는 오늘날의 CCTV니, 핸드폰감청이니 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아마 써로게이트로 보내지는 영상이나 소리를 컨트롤 해서 사용자에게 무의식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조차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적다보니 영화보다 개인적인 "썰"이 길었다. 이제는 컴퓨터, 핸드폰, 각종 모바일 기기등이 없는 삶을 하루도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불과 20-30년전에는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세상이다. 어린시절 공상과학소설 속의 멋진 광경들을 보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흥분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된 오늘, 과연 나는 그것들로 인해서 행복한 것일까. 그리고 20년, 30년이지나, 써로게이트의 세상이 다가 왔을 때,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수원성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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