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0일 화요일

동해안 한바퀴..2010.8.2-8.3

밍군의 <곰팡이展> 오프닝을 마치고,

 

 대구에 들른 김에 경북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전시를 준비하느라 따로 여행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전시 오픈 당일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파김치가 된지라,

 

핸드폰으로 주섬주섬 정보를 찾아서 코스를 짰다.

 

일단 포항 호미곶에 들른 후, 7번국도를 따라 울진까지 가서 덕구온천이나 백암온천에서 1박을 하고,

 

불영계곡과 부석사를 들러 집에 돌아오는 코스를 잡았다.

 

일단 밥먹고 시작! 아침8시 경주 근처 <전주기사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간만에 먹은 밥같은 밥(대구음식 짜고 맵고..ㅠ_ㅠ)...

한데 이곳도 좀 지나니 속이 아려오고 물이 먹히는 것이 조미료를 좀 쓰신듯--;

 

7번국도를 타서 포항으로 접어들려는데,

포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밍군 사촌동생에게 물어보니,

호미곶은 별볼일 없더라..라는 말을 듣고,

호미곶은 패스!

 

백암온천에 전화를 해보니, 성수기라고 숙박이 선착순인지라,

 시간을 조금 절약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7번국도를 따라가다 처음 들른 곳은 <삼사해상공원>

근데..정자 하나 있고, 별거 없다. 해돋이볼때면 모를까..

차라리 내려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해변의 풍광이 분위기 있는듯.

 

7번국도와 나란히 해변을 따라 난 길을 따라서 강구항을 향했다.

여행온 차들로, 식사하는 차들로 북적거리는지라,

차마 차를 세워 풍경을 담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조금 지나쳐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 한참 위쪽, 울진에 가깝기까지, 동해안의 풍경은 한결같다.

바다, 바위, 가끔 조그만 모래사장, 해수욕장, 바다로 난 계단,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다를 향해 옹기종기 모인 집들.

 

 

 

바다가를 따라 드문드문 보이는 조그만 모래톱들,

그리고 수많은 발자국들, 누군가들의 조그만 해변이 되어주었던듯.

 

 

다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커다란 대게발이 해를 물고 있는 해맞이 공원.

아까 들렀던 삼사 해상공원에 비해 내려보이는 바다 풍경도,

조성해 놓은 뽐새도 훨씬 훌륭하다.

 

 

어느덧 3시를 넘어 출출함이 다가온다. 다시 7번국도로 차를 올려

울진을 조금 지나 <토담막국수>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

시원 달달 매콤함이 맛깔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고성에서 맛본 <백촌막국수>의 시원한 동치미 육수에는 모자란다 싶다.

 

 

 

식당 강아지들과 좀 놀아주고....

성류굴로 향했다.

 

성류굴 입구는 다소 의외의 모습.

간이 표시판으로 길이 설명되어 있고,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가득하다.

적힌대로 도보로 2분여정도 걸어야 굴 입구에 닿을 수 있다.

 

 

동굴은 좁고, 관람로는 한줄로 된 구간이 많다보니, 나아기가 쉽지 않다.

시원하다 못해 춥지 않을까 생각했던 동굴 내부는

이미 사람들의 열기로 인해 미적지근 덥혀졌다.

 

 

6시를 조금 넘겨, 피서철에 비교적 숙박잡기가 쉽다는 백암온천에 도착했다.

먼저 찍어둔 백암고려온천호텔에는 4인실만 하나 남아 있다는 답변.

시설이 좀 괜찮아보이는 백암프린스 호텔 역시 4인실에 12.8만원을 부른다.

조금 돌아 백암피닉스 호텔에서는 머뭇거리며 2인실을 내어주는데....

 

 

말이 좋아 호텔이지..거의 장급 여관 수준.. 백암온천이 워낙 오래전에 개발이 되었고,

시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터라, 화장실이 깨끗한걸 확인하고 ok.

방이 작아서 6.5만원이던 요금을 5만원에 해준다는데, 그냥 하는 이야기인듯 하고,

내가 알기론 6.5만원은 주말 요금이다.

투숙객은 호텔에 딸린 온천이 무료. 외양에서 짐작가듯, 소박한 탕인지라,

좀 더 다양한 탕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긴 했다.

 

 

저녁은 백암온천 터미날에 위치한 <전주기사식당>에서 생더덕백반.

관광지이다보니 (주머니에) 만만한 식당이 없던 탓인지, 주변 식당들은 텅 비어 있는데,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체로 삼겹살등을 굽고 있는데,

고기는 3인이상부터 주문을 받는지라, 생더덕백반을 주문,

더덕이라는 것을 빼면 솔직히 가격대비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울듯.

고기 한점 먹지 않았는데, 온 몸에 고기 냄새가 베어서 억울했다.

방금 온천에 들어가서 씻고 나왔는데--;

 

 

백암온천 터미널 앞 대로(?)를 따라 일렬로 식당들, 가게들, 유흥업소들이 늘어서 있다.

밍군 말마따나 속리산이나, 경주 등으로 수학여행 갈때 으례 숙소부근에 펼쳐지는

무척 심심한 풍경들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려 했으나..준비하다 보니 10시가 다 되어 느즈막히 백암온천을 떠났다.

제방 길가를 따라 백일홍이 한무릇 피어났다.

 

전복죽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후포항의 등대식당.

 한그릇에 \10,000 이라 들었는데, 좀 된 정보였던 모양이다. 그릇당 \14,000.

어디나 전복죽은 그정도 가격은 하니까...

본죽 골뱅이 죽도 \8,000원이나 하니까..

 

 

20분정도 기다려 전복죽이 나왔다.

전복은 아마도 한마리를 나눠서 두그릇에 넣은듯.

고소하게 간이 된 죽과 간단한 반찬.

바닷가에서만 가능하다는 신선한 전복의 상징..내장을 함께 넣은

푸르스름한 빛이 돈다.

 

근데..뭐..전복죽은 식당에서 딱히 자신없으면 시도하는 메뉴는 아니라서 그런가..^^

고향인 제주도에서 먹은 전복죽이나,

충무로의 <송죽>에서 먹은 전복죽이나...

비슷한 것 같은데..^^;

 

하긴 이미 20년이 넘게 소문이 난 집이라 하니,

어느정도 맛들이 상향 평준화 되었을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식당 뒷쪽으로 난 야트막한 산에 멋지게 전망대를 꾸며놓았다.

이런 조그만 항구에도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은  꾸준한 모양이다.

 

 

그 뒤쪽으로 작은 해수욕장이 펼쳐지는데,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 너머 무언가를 싣고 내리는 산업시설이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동해안을 따라 이런 대조 - 피서객과 산업시설 - 가 자주 보인다.

 

 

후포항을 나와 불영사와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 중이었는데...

불영사에 들어가면 계곡입장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경내에서는 계곡출입 금지였다.

 

 

영주를 들러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다음으로 미루어야만 했다.

대신 유명하다는 영주 한우마을에서 한우를 맛보기로..

 

 

갈비살과 꽃등심이 섞여 나오는데..식사는 540g에 \64,000, 600g 포장은 \54,000

먹느라 정신이 없다보니 정작 익히는 사진이 없다..^^;

구리석쇠에서 앞뒤로 살살 익혀먹으니, 마치 묵처럼 입에서 녹아내린다.

단점이라면 한우가 늘 그렇듯, 쉬 느끼해진다는 것.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다..

중앙을 지나 영동을 타자니 피서철이라 늦은 시간에도 교통 체증이 굉장하고..

그렇다고 국도를 이용하자니 시간이 오래걸리고....

결국 영동을 탔다가 여주에서 나와서 국도를 이용해서 경부선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이달 말, 전시가 끝나면 철수를 위해 다시 대구를 들러야 하는데,

그때는 부석사와 단양을 한번 둘러봐야겠다.

 

 

2010년 8월 4일 수요일

곰팡이展, 작은공간 이소

곰팡이展

20100731-20100828

작은공간 이소

 

 

밍군이 심혈(?)을 기울인 곰팡이展 2인전이 대구 작은 공간 이소에서 오픈했다.

 

계명대학교 대명 캠퍼스 앞,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공간 이소.

계명대학교 졸업생인 황현호씨가 약 2년전부터 홀로 운영해오고 있다.

본인의 삶도 넉넉치 않은데, 미술인들을 위한 공간을

어렵게 어렵게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다.

 

 

전시장 벽에 피운 곰팡이들. 비닐을 걷기 전.

비닐을 걷지 말고 사람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비닐을 걷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은 없지만,

일단 곰팡이들인지라, 관객들이 영 접근하지를 못한다.

 

 

 

벽에 그려진(?) 곰팡이들.

 

 

 

이준용 작가와 밍 작가.

이준용 작가는 해골모형에 피운 곰팡이와,

곰팡이로 만든 우리나라 지도를 전시했다.

 

 

 

밍 작가의 생각하는 사람.

세 부분으로 나눠서 트렁크에 넣고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중 곰팡이가 확 번져서 놀랬더랬다.

약 일주일 전엔 하얀 밀가루 반죽에 불과했던 것.

 

 

 

이렇게 빨리 많이 자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곰팡이의 번식력에 새삼 놀라울 뿐.

(이 모습을 보고 집에 가서 작업실을 아주 대청소를 했다)

 

 

 

전시장 풍경.

 

기획자(겸 운영자 겸, 청소부 겸, 등등..)인 황형호씨가 말했던 대로 '품(品)'을 넘어서,

곰팡이 그 자체가 확 다가오는 공간으로 꾸며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밍군의 개인적인 고민들 사이로, 생각하는 사람 위로 침식해가는 곰팡이들에서

복잡히 얽어진 치유와 침식, 재생의 과정이 잡힐듯말듯 그려지는듯 하다.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스크류

 

밍군 작업 중에 놓인 나사들...

 

 

 

 

 

문득 앙드레 케르테즈의 포크 사진과..

 

 

 발데사리의 <앵그르> 가 생각났다.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보라매역 코코이찌방야

보라매역 농심 건물에 위치한 코코 이찌방야.

지나다니면서 COCO만 보고 코코호도 과자 본점인가 생각했었는데...

나름 유명한 카레집이란다.

 

 

 

깔끔한 입구. 입구만 봐서는 꽤 비싼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도...

 

신경쓴 분위기의 실내...카레집이라기보다는 커피숍 같은 분위기.

 

 

 

허나, 동네가 동네인 까닭에,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냥 그렇다는...

 

 

 

 

메뉴판...골라야 할 것들이 많다. 일어를 그대로 옮겨놔서 가뜩이나 메뉴판이 낯설은데,

매운 맛 고르는 것 까지 1신, 2신 종업원이 한자로 읊어주니..상당히 정신 사납다..ㅡㅡ;

밥에 따라 소스 양도 달라진다면서..밥이 300g->200g으로 1/3이 줄었는데..

500원만 깍아주는건 뭘까...남기기 싫어서 200g으로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생각없이 300g을 얹어왔다.

(물론 돈은 500원 깍은 가격으로 그대로...)

 

 

 

 

 밍군은 오므라이스를 시키고,(오므라이스는 토핑 및 매운 맛 선택이 제한적..)

나는 튀긴 닭 카레에 토마토와 아스파라거스 토핑을 추가하고, 약간 매운 맛 1辛을 선택했다.

전형적인 일본식 카레인데, 전형적이면서도 인스턴트 냄새도 풍기지 않고,

또는 지나치게 달달하게 하이라이스처럼 만들지도 않아서 흠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난한 맛.

아마 그 어느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는 못해도 '맛없다'고 평하긴 힘들 것 같다.

다만 내 취향이 이것보다는 다소 인도틱, 혹은 이런 맛이라면 백세카레--; 라서...

'굉장하다'라는 평은 어려울듯.

 

 오므라이스의 계란 표면이..부들부들하게 반숙상태로 조리가 되어있었는데...

어떻게 했는지 무척 궁금했다..예상으로는..우선 얇게 펴서..일반적인 오므라이스 계란을 만들고,

건져내기 직전에 위에 다시 계란을 얹어 반숙 상태의 표면을 만들지 않았나 싶은데....

암튼 신기....

 

먹다보니 살짝 시원하거나 칼칼한게 땡기는데..제공되는 오복채는 시원하지도 않고..

새콤하다기보다는 단맛이 강해서..피클, 혹은 시원한 단무지 생각이 많이 났다..ㅡㅡ;

 

메뉴 가격들이 7,000원 - 1만원 사이로, 보통 일식 카레집보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맛을 생각했을 때는 상대적으론 아깝지 않은 가격....

 

다만...내 취향에 한해서..난 그냥 집에서 백세카레 끓여 먹을래...ㅡㅡ;

 

2010년 6월 20일 일요일

다문화 가정, 그리고 한스하케의 독일 주민에게 (DER BEVÖLKERUNG)

 최근 L모 기업에서 그룹 이미지 광고로 다문화사랑 캠페인 TV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이미 농어촌은 한국인 신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시점에서

참 시기 적절한 광고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 과연 십수년이 지났을 때,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될지 걱정스러운 생각도 든다.

 

특히나 우리처럼 나면서 죽을때까지 "한민족"을 강조하는 나라라면 더더욱...

 

십수년내에 커다란 사회 갈등의 요소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무척 크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 광고를 보면서 내내 머리속에 떠다니는 작업이 있었는데,

 한스하케의 <독일 주민에게 DER BEVÖLKERUNG>이다.

 

 한스 하케는 소위 "정치적 예술"이라 분류되는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작업을 하는데,

 

대체로 미술과 자본의 관계, 그리고 독일의 역사의식들에 대한 작업이다.

 

그중 <독일 주민에게>라는 작업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2000년 찬반 양론 끝에

 

 독일 국회 건물에 설치된 것이다.

 

국회건물에 새겨진 <독일 국민에게>

한스하케의 <주민에게>

 

 

 자세한 내용은 김인혜(국립현대미술관학예연구사)씨의

 

 <한스 하케의 DER BEVOLKERUNG - : 미술과 정치, 서로 말걸다.> 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빌헬름 2세 시절 독일 국회건물에 새겨진 "독일 국민에게"라는 글귀는 독일의 제국주의의 상징이며,

이후 나치가 사용했던 '국민', 혹은 '자국(게르만)민족'의 신비화에까지 닿아있는 글귀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 맥락의 '국민'이라는 단어보다는 '주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한스 하케의 주장이다. (유태인학살의 과거와 네오 나치 등의 게르만 중심주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독일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주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국회 벽에 새겨진 "국민에게"와 똑같은 글씨체로 "주민에게"를 써서 국회 안뜰에

화단을 꾸며놓은 것이었다.

 

 

 "국민"에 대한 한스 하케의 주장-"주민"-은, (비록 독일은 2차대전의 가해자라는 차이는 있지만)

 

우리의 유별난 "민족"과 "국민"의 강조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월드컵 열기로 온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 "대~한 민국"을 외치는 요즘,

 

비록 60여년전에는 역사의 피해자였지만, 지금 우리는 어쩌면 이미, "민족'과 "국민"의

 

가해자가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한스하케 작업에 대한 자료. (밍군 작성)

2010년 6월 14일 월요일

옥수 12, 13지구

 매일 일산(이라기보다 벽제에 가까운)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던 동생 내외가

 

 서울 옥수동 극동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지난 현충일  잠시 들러보니, 바로 맞은편에 옥수동 12/13 지구 재개발현장이 바라보인다.

 

작년 6월말에 옥수동 재개발 현장을 찾았으니, 벌써 1년여가 흘렀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던

 

그곳은 이제 깨끗하게 흙무덤이 되어 새로 올려질 아파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재개발, 아파트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커져가는 이때,

 

 과연 저기 벌거벗은 땅에 걸린 사람들의 희망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잠시 아파트 난간에 몸을 맡기고 생각해본다.

 

 

작년 사진들 보기.